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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과 세컨더리 보이콧의 첨예한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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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과 세컨더리 보이콧의 첨예한 대립

주간동아입력 2018-08-18 21:49수정 2018-08-18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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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반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진룽호가 8월 7일 오후 경북 포항신항에 입항해 러시아에서 싣고 온 석탄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동아DB]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방문해보면 한국산 중고버스가 눈에 많이 띈다. 한글 안내문을 그대로 붙이고 있는 부산·경남지역 시내버스와 교회버스, 마을버스, 유치원버스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는 더 많은 수의 일본 승용차를 만날 수 있다.

러시아는 한국처럼 차량 우측통행제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좌측통행 승용차를 수입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냉전 시절 자유진영국가는 공산국가에 자동차를 수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폐차 판정을 받은 자동차는 폐기물이기에 판매할 수 있었다.

일본은 북방 4개 섬을 옛 소련이 강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직접 무역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과는 그러한 걸림돌이 없었으니 폐기물 거래를 했다. 일본의 폐차 수출업체들은 일본 정부 폐기물 처리 보조금까지 받아가며 북한에 폐차를 수출한 것이다.

북한산이 49%인 러시아산 석탄

북한이 옛 소련과 맺은 조소우호조약에는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북한은 이를 활용해 일본 중고 승용차를 수입한 다음 바로 차량 수요가 많은 극동러시아로 수출했다. 이 일에는 일본에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계 업체가, 북한에서는 인민군 산하 기업체가 참여했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북한 기관들은 권력 유지비용을 만들고, 블라디보스토크는 필요한 차량을 확보한 것이다.

옛 소련이 무너진 뒤 생겨난 러시아는 법으로 차량 우측통행제를 정했다. 이 때문에 대중이 타는 버스 등은 안전을 고려해 우측통행용만 수입하게 했으나, 승용차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마피아계 기업이 일본 승용차 도입 사업을 해왔는데, 그들의 로비로 좌측통행 승용차의 수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 이 ‘한시(限時)’를 계속 연장해 일본 중고 승용차의 블라디보스토크 수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극동러시아의 현실이 바로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거론되게 만든 북한산 석탄 등의 한국 직도입을 낳은 배경이다. 한국은 연탄을 더는 가정용 연료로 쓰지 않는다. 이에 석탄 수입은 석탄발전소나 용광로를 돌려야 하는 발전회사 또는 제철회사가 주로 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국가와 장기 계약을 맺어 석탄을 다량으로 수입한다.

그런데 발전회사는 일정하게 수입하는 석탄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올여름처럼 폭염이 계속돼 피크가 이어지는 경우다. 이때는 추가로 석탄을 확보해 석탄발전소를 더 가동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불량국가 등으로 지정돼 무역에 제한을 받아온 북한은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조러친선선린조약)의 자유무역 조항을 이용해 그러한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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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러친선선린조약의 전신인 조소우호조약에는 자동 참전 조항이 담겨 있었다. 옛 소련은 한국으로부터 빌린 차관 일부를 무기 수출로 변제한 적이 있다. 러시아가 한국에 무기를 수출하면서 한국의 적인 북한과 자동 참전하는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한국의 지적을 받아들여 1996년 이 조약을 폐기하고 2000년 자동 참전 조항이 빠진 조러친선선린조약을 북한과 맺었다.

그때 북한은 상당히 반발했으나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대다수 언론은 북한산 석탄이 열량이 낮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품질이 좋은 것은 북한산이고, 떨어지는 것은 극동러시아산이다. 극동러시아산 석탄은 연기도 많이 나기 때문에 환경규제를 엄격히 하는 나라는 사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러시아는 질 좋은 북한산 석탄과 섞어 판매하는 방법을 택했다.

북한산 석탄 49%에 러시아산 갈탄 51%를 섞으면 수출도 잘되고 값도 더 받을 수 있는 러시아산 석탄이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동해는 해류 때문에 북에서 남으로 가는 배가 훨씬 빠르다. 석탄 등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는 운송시간도 중요한데, 동해에서는 남행이 유리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과 일본 전력회사들은 전력발전을 피크로 올리는 데 필요한 석탄을 극동러시아로부터 많이 도입해왔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북한산 석탄을 간접 수입했다.

소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이러한 현실을 파악한 북한 권력기관이 러시아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로 대량 들여온 다음 러시아산 갈탄을 섞어 수출하는 사업에 진출했다. 자유무역 조항을 이용해 ‘무늬만 러시아산’으로 꾸며 북한이 직접 장사를 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석탄발전소를 돌려야 하니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이를 도입해왔다.

지난해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의 거듭된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이유로 석탄을 비롯한 북한 광물자원 수입을 금지하는 대북제재안을 채택했다. 그것과 별도로 미국 의회는 북한산 제재 품목을 수입하는 나라에 세컨더리 보이콧을 가한다는 강력한 제재법안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무늬만 러시아산 석탄을 수입하는 업체들은 조심했는데, 올해 변수가 생겼다.

경북 포항신항 제7부두에 정박한 진룽호를 촬영한 위성지도. 북한산 석탄을 국내로 들여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동아DB]

탈핵정책과 북한산 석탄 도입의 방정식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탈핵정책과 더불어 석탄발전소를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보고 탈석탄발전을 선포했다. 이 중 주목을 끈 것이 탈핵이었기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점검 등을 이유로 정상 가동 중인 원전을 세우게 했다. 이후 원전 가동률이 50%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올여름 날이 더워지면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자 상황이 변했다. 안전점검을 이유로 한 정비는 단순 정지와 다르다. 모든 나사를 풀고 부품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라 원자로를 완전 해체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재가동 지시를 받아도 즉각 가동할 수 없다. 원전 운전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조립할 때마다 제대로 했는지 시험해보고 다음 조립을 해야 한다.

반면, 석탄발전소는 즉각 가동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세워놓은 석탄발전소를 돌리게 했고, 석탄 수입이 절실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소량이 필요한 경우 가까운 러시아에서 가져오는 것이 경제적이다. 날은 점점 뜨거워지고 원전은 아무리 빨리 재조립해도 최소 시간이 필요하니, 전기 부족으로 블랙아웃이라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까지 더해졌다.

이런 석탄 부족 현상 때문에 일부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국적세탁’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직수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분명한 불법을 미국이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모든 해운선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출항 사실을 보고한다. 그리고 사고를 당했을 때 구조에 대비해 위치를 자발적으로 송신하고 있다. 그러한 자료를 분석하면 어떤 선박이 어디로 들어갔다 어디로 향하는지 추적이 가능하다. 첩보위성이나 항공기를 동원해 사진을 찍으면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일본 해상보안청은 공해상에서 북한 유조선을 만나는 한국 유조선을 찾아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일본은 한국 유조선이 북한 유조선에 석유를 제공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봐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으나 한국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언론을 통해 이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북한 유조선에 석유를 공급하지 않았다며 일축했다.

한국은 미국이 북한산 석탄을 직수입하는 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을 때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소리(VOA)가 관련 사진과 함께 보도하며 세컨더리 보이콧을 거론하자 소동이 일었다. 한국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미국에 보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게 한 후 북한산 석탄을 직도입한 업체를 처벌한다는 발표까지 하게 됐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이 기소하는 것을 봐가며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북한산 석탄 직도입 사건에 대해 외교부와 관세청은 자기 일이 아니라며 핑퐁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극동러시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이 문제는 외교부와 관세청이 아니라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관할한다”고 단언한다. 극동러시아에는 페이퍼 컴퍼니 운영 등을 위해 많은 북한 요원이 나와 있는 만큼 국정원도 상당수 요원을 블랙과 화이트, 그레이로 파견해놓았다.

이들은 북한 권력기관이 보낸 요원과 접촉하는 공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따라서 권력 측의 지시가 있으면 불법공작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일등 공신이니 북한과 교류에도 앞장서야 한다.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규모 대북투자 방안을 밝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대북사업 준비하는 공기업과 국책연구소

8·15 경축사에서 밝혔듯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를 유도한다고 보고 상당한 금액의 대북경협을 준비 중이다. 정부 입김이 작용되는 거의 모든 공사(公社)는 내년 예산에 대북사업을 넣느라 분주하다. 국책연구소들도 북한과 공동연구를 하려고 상당한 규모의 대북사업을 기획하며 예산을 만들고 있다. 이 기관 관계자들은 대북 예산 편성을 거의 마쳤다고 전한다. 그리고 민간기업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할 때 주식시장에서 일어난 현상이 대북 수혜주 급등이었다. 그러나 상당수 민간기업은 자사 주식이 대북 수혜주로 불리며 주가가 올랐음에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우려하는 듯 대북사업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몇몇 기업만 적극성을 보였다. 민간 항공사들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의식해 북한에 전세기를 보내지 않으려 했고, 정부는 군용기로 방북단을 실어 날라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기업이 국적세탁을 하지 않은 북한산 석탄을 직도입하는 것은 관련 기관의 협조나 방조가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서류상 하자가 없어도 북한산 석탄을 도입하면 문제가 되는데, 민간기업이 서류상 하자가 있는데도 수입했다는 것은 뒷배경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은 국정원이 구축해온 대북 공작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만든 사회단체도 상당한 협조망을 구축했지만 국정원 라인을 능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과 거래 및 협조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국정원이 구축해온 공작망이 노출된다. 이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김일성 사망으로 회담을 하지 못했던 김영삼 정부, 그리고 실제로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발견된 현상이다.

북한산 석탄 직도입과 관련해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이 사건은 석탄 게이트로 번질 수도 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데, 국정조사를 넘어 특검조사로 간다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국정원의 대북 공작망까지 드러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외부 원인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

외부 원인은 북·중 접근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은 북한 개천비행장으로 대형 항공기를 보내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중국 비행기가 북한 공군비행장에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북한 공군기의 활동이 증가했다.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한창인 와중에 거의 훈련이 없던 북한 공군기들이 실기동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 관계자들은 이를 6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3차 북·중 정상회담의 산물로 본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무시한 채 북한을 대규모로 지원하기 시작했기에 북한이 공군기 훈련을 증가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제재하고자 무역전쟁을 걸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에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 같은 불의의 일격을 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이 북한과 거래한 중국 기업을 제재하기로 결정하면 같은 혐의가 있는 한국 기업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피해가려면 북한산 석탄 등을 직도입한 업체를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처벌을 가하면 종전선언과 남북경협에 다걸기를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빛이 바랜다.

세컨더리 보이콧 실행과 국정원의 대북 공작망 폭로 가능성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종전선언과 대규모 남북경협, 그리고 평양 남북정상회담이다. 둘의 대립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한반도는 오리무중의 상태로 들어가고 있다. 한중일 차량이 뒤섞여 다니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공사장에서는 오늘도 북한 근로자의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북한산 석탄 직도입은 석탄 게이트로 발전할까.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5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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