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2050년 절반 수몰 위기… 마지막 亞경기 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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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예상보다 속도 빨라진 지구촌 기후변화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 연구 발표


아시안들의 대축제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가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경기 역사상 처음으로 자카르타와 팔렘방 두 도시에서 공동으로 개최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슬라탄주(州) 주도인 팔렘방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수도인 자카르타는 1962년 아시아경기 이후 56년 만에 또 한 번 축제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대회는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마지막 아시아경기가 될지 모른다. 앞으로 30여 년 뒤면 자카르타의 절반 이상이 지도 위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ITB)의 하사누딘 아비딘 교수와 헤리 안드레아스 연구원팀은 13일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50년에 자카르타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북자카르타는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근 20년간 진행된 자카르타 지역의 지반 침하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영향을 토대로 예측한 결과다. 안드레아스 연구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안 지역인 북자카르타 행정구는 연평균 25cm씩 가라앉고 있어 2050년에는 전체 면적의 95%가 물 밑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서쪽에 위치한 자카르타는 면적 661.5km², 인구 1000만 명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도시다. 인구와 면적은 서울과 비슷하지만 평균 해발고도는 7.92m로 서울(38m)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게다가 바다와 맞닿아 있고 도시 곳곳에 인공 강을 포함한 13개의 강이 가로질러 태풍, 해일, 폭우 등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하다. 자카르타가 우기 때마다 홍수로 몸살을 앓는 이유다. 자카르타는 올해 2월에도 홍수로 4명이 사망하는 등 총 1만1000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여파로 극심한 폭우와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이 더 잦아지고, 지구온난화로 극지의 대륙 빙하가 녹아 해수 양이 늘면서 피해가 심해졌다.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 물의 부피도 팽창해 해수면 상승을 부추긴다.

자카르타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비단 기후변화만은 아니다. 상하수도 정화시설을 갖추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려고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개발한 것이 더 큰 화근이 됐다. 지하 40∼140m 깊이의 대수층(帶水層·물이 저장된 지층)에서 물을 퍼올리다 보니 땅이 쪼그라들 듯 주저앉게 된 것이다. 해수면은 올라가는데 지반은 내려가는 진퇴양난의 형국에 놓인 것이다.

고경석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연구본부장은 “연안 저지대는 지반이 암반이 아닌 토양 퇴적층으로 이뤄져 있어 무르기 때문에 흙이 잘 다져진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지하수를 과도하게 빼내면 땅이 가라앉거나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카르타 등 동남아 지역의 연안 도시들은 토양 퇴적층이 200∼250m로 한국 연안(5∼30m)보다 훨씬 두껍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해수면은 전년 대비 0.31cm 상승했다. 1993년(연간 0.17cm) 이후 최고 상승폭인데 자카르타가 물에 잠기는 속도는 이보다도 수십 배 빠른 상황이다. 특히 북자카르타의 침하 속도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투발루, 몰디브 같은 섬 국가나 베트남 호찌민 등 다른 연안 도시들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빠르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라앉고 있는 셈이다. 안드레아스 연구원은 “북자카르타뿐만 아니라 자카르타 전체의 지반이 내려앉는 속도도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어 이미 도시의 절반은 해수면보다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해안선을 따라 2025년까지 인공 섬 17개와 32km 길이의 방벽을 만들 계획이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길게 바다를 접하고 있어 5세기부터 동남아 주요 도시들을 잇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였던 북자카르타. 현재도 인도네시아의 최대 항구이자 제1항만인 탄중프리옥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북자카르타 인구 180만 명을 지탱하는 어업과 무역업, 운송업이 이곳에서 자라났다. 동남아 최대도시인 자카르타 역시 북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고 있다. 눈앞의 편리함만 추구하다 지구 곳곳에 우리가 세운 역사마저 바다 밑으로 영원히 가라앉는 건 아닐까.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자카르타#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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