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훈련 끝나면 여기저기서 울음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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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 단일팀 ‘南女’들의 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드래건보트(용선) 종목에 남북 단일팀으로 첫 출전을 앞둔 여자 대표팀 남한 선수들이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예린, 강초희, 김현희, 장현정, 현재찬, 변은정, 조민지, 최유슬. 충북 충주에서 북한 선수들과 하루 두세 차례 8시간의 강훈련을 소화 중인 이들은 한목소리로 “노력한 만큼 값진 결과를 얻어 오겠다”고 다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드래건보트(용선) 종목에 남북 단일팀으로 첫 출전을 앞둔 여자 대표팀 남한 선수들이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예린, 강초희, 김현희, 장현정, 현재찬, 변은정, 조민지, 최유슬. 충북 충주에서 북한 선수들과 하루 두세 차례 8시간의 강훈련을 소화 중인 이들은 한목소리로 “노력한 만큼 값진 결과를 얻어 오겠다”고 다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그때 그 느낌’이 지금 이 팀에서 느껴져요. 자신 있습니다(웃음).”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드래건보트(용선)에 출전하는 여자 대표팀 ‘청일점’ 현재찬(34·울산시청)은 사상 첫 아시아경기에 나설 동생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 당시 패들러(노잡이)로 남자 용선에 출전해 1000m 동메달을 딴 그는 팀의 유일한 ‘메달리스트’다. 20대 초중반의 남북 선수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주기 위해 성별 제약이 없는 스틸러(키잡이)로 여자팀에 합류했다. 선수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감독과 선수 사이의 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재찬 언니’라 불린다.

지난달 30일 북한 선수 8명이 합류해 16명 완전체를 구성한 여자 대표팀은 부족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린다. 폭염을 피해 매일 새벽, 저녁 하루 두 차례 수상훈련(6시간)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수상훈련 외에 2시간 동안의 단내 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진행한다. 기온이 섭씨 30도대 중반을 넘는 폭염 속에 용선 의자에 살이 쓸리고 벗겨져 통증이 밀려오지만 아파할 새도 없다. 변은정(20·구리시청)은 “전날 ‘오늘이 제일 힘들었다’고 했는데 다음 날 또 같은 얘기를 한다”고, 조민지(21·전남도청)는 “훈련이 끝나면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훈련의 혹독함을 표현했다.

강도 높은 훈련 속에 북한 선수들과는 금세 하나가 됐다. 만난 지 이틀 만에 ‘생년월일’을 공개하고 나이대로 서열을 정하고 말을 놨다. 여자 선수 중 남한 김현희(26·부여군청)가 맏언니, 북한 리향(16)이 막내다. ‘1998년생’이 16명 중 5명으로 최다다. ‘원 팀’의 주장이 된 김현희는 “나이 덕(?)에 주장을 맡아 얼떨떨하지만 가슴 벅차고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나면 안부 정도만 묻던 대화도 농담 섞인 대화들이 오갈 정도로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 북한 선수가 “수탉이 낳은 알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됐을까?”라고 질문을 던져 남한 선수들이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알을 못 낳는 수탉이 알을 낳는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서란다. 최유슬(19·구리시청)은 “요즘은 좀 더 살집이 있는 우리 선수들이 북측 선수들에게 뱃살을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순우리말 위주인 북한 기준에 맞췄다. 앞에서 북을 치는 드러머는 북잡이로, 뒤에서 방향키를 잡는 스틸러는 키잡이라 부른다. 결승점인 피니시 라인은 ‘공간’이다. 강초희(19·속초시청)는 “처음에는 어색한 나머지 쑥스럽게 웃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오래 써온 것처럼 말한다”고 말했다.

훈련시간 외에는 밥도 따로 먹어야 할 정도로 제약이 따르지만 남북한 선수들은 틈틈이 소소한 이벤트를 하며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중이다. 9일에는 웨이트트레이닝 훈련장에서 7, 8월이 생일인 남북한 선수 및 지도자를 한데 모아 ‘5분짜리’ 생일축하 행사를 진행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 때 ‘사랑하는 단일팀’이라고 했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짧았지만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됐어요.”(이예린·19·한국체대)

남북한 선수들은 대놓고 목표를 ‘금메달’이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훈련 때마다 이심전심 “최고를 향해!”라고 구호를 외치며 대회 날만 손에 꼽고 있다.

“노력한 대로 성적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요. 노력한 대로(웃음).”(장현정·20·한국체대)

순간 선수의 발음이 꼬여 ‘노력한 대로’가 금메달을 상징하는 ‘노란 거로’라 들릴 정도로 선수들의 자신감은 넘쳐 보였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드래건보트#남북 단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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