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문재인 정부의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최근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입국장 면세점 도입 등 오랫동안 묵혀 왔던 규제 사슬을 앞장서 풀고 있다. 원래 탈규제(Deregulation)는 민영화, 감세 등과 함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같은 우파 정권의 간판 메뉴다. 요즘 정부 인사들은 ‘소득주도성장’ 대신 시장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포용적 성장’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 선회를 두고 전통적 지지 세력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이들의 불편한 심정이 드러난 것은 좌파 경제학자들이 주축을 이뤄 323명이 동참해 지난달 18일 발표한 선언문이다. 요점은 최저임금 인상을 할 때만 해도 기대가 컸는데 이제는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산입범위 조정, 처벌유예 같은 예외조항으로 효과가 크게 반감됐고, 재벌개혁은 미적거리고, 부자증세는 너무 보잘것없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면서 정부와 청와대 핵심 부서에 구태에 젖은 경제 관료 대신 개혁을 추진할 인물을 포진시킬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 선언문 발표 이후 열흘도 안 돼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홍장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경질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대신 그 자리에 ‘구태에 젖은 경제 관료’인 윤종원이 앉았다. 대통령부터 혁명적으로 규제혁신에 나서라고 다그치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을 돌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문재인 정부에서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한 대표적인 사례로 규제완화가 꼽힐 것이다.

방향 전환의 이유는 간단하다. 소득주도성장이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성과는커녕 고용 참사, 자영업자의 저항 같은 부작용만 잔뜩 불러왔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게 별것 아니다. 콩 나기를 기대하면 콩을 심어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일자리 만드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이 뛰려면 발목 잡고 있는 규제가 없어져야 한다. 쉽고 간단한 이치다. 앞으로 자잘한 건수 채우기보다 의료·보건 서비스 규제 같은 덩어리를 통째로 풀거나 아예 규제방식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혁신 쇼만 벌이다 말았다는 평가를 듣기 십상이다.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좌회전 깜빡이, 우회전’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제주해군기지, 이라크 파병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경제 관료나 경제계 인사들은 ‘반미(反美)면 어때’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 체결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회고한다.

올 4월 정부 측에서 나온 평가를 보면 FTA 이후 5년간 농수산 피해는 크지 않은 가운데 경제성장률은 0.31%, 일자리는 1만6000∼5만7000개 정도 생겼다. 오히려 미국 쪽에서 더 부정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미 FTA를 ‘재앙’이라며 폐기까지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한미 FTA는 좌파 정부의 상당히 성공한 우회전 정책인 셈이다.

공화당 소속인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정책인 보호무역주의 칼을 꺼내 휘두르고 있는 중이다. 요즘 독일 프랑스 일본 가릴 것 없이 선진국들의 대세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일자리만 생긴다면!’이다. 우리 역시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일자리 생기는 곳이 정확한 방향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규제개혁#소득주도성장#포용적 성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