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희정 무죄’ 판결이 미투의 未來 향해 던지는 숙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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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를 이용해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어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범행 당시 위력 행사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수 있는 정도여야 처벌할 수 있다”며 “피해자 심리상태가 어땠는지를 떠나 피고인이 어떤 위력을 행사한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올 초부터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미투 운동과 관련한 첫 선고에서 무죄가 나온 것은 미투 운동의 미래에 여러 숙제를 던진다.

우선 권력의 상하관계에서 벌어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의 핵심 쟁점인 ‘위력’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처럼 법원이 위력의 범위를 매우 엄격히 해석한다면 미투 폭로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무형적 위력도 위력에 포함시킨 대법원 2005년 판례도 있는 만큼 가해자의 우월적 지위가 간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 관계성을 보다 중시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 성폭력 처벌체계의 진전 필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재판부도 어제 판결문에서 “‘Yes Means Yes rule’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법제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며 고민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Yes Means Yes rule’은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동의 의사가 있어야만 합의하에 성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행법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형법 297조는 강간죄 성립 기준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규정하고 있어 강간의 기준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보고 있다. ‘당사자 간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하고 권력형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법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판결이 미투 운동의 위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미투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부정적 효과가 미쳐서도 안 된다. 직장 내 성폭력을 겪는 여성들을 상대로 ‘진짜·가짜 강간 찾아내기’ ‘꽃뱀몰이’ 등이 벌어질 것이라는 여성단체들의 우려가 기우로 그치도록 국회와 정부, 시민사회가 여성들의 외로운 싸움에 내 딸, 내 아내의 일처럼 지지를 보내줘야 한다. 미투는 가해자 개인에 대한 사법 처리를 넘어 21세기판 차별극복운동이며 인간성 회복 운동이다. 상하·갑을 관계, 남녀 간의 신체적 힘의 차이 등을 등에 업은 성폭력 등 부당한 권력 행사가 없어지는 미래를 향해 미투 운동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안희정 무죄#성폭력 처벌체계#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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