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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광표]비망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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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광표]비망록의 두 얼굴

이광표 논설위원 입력 2018-08-10 03:00수정 2018-08-1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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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을 걷어 가면 외래는 깜깜하게 어두워졌고 중증외상환자가 밀물같이 응급실로 모여들었다. … 의사는 힘들고 환자는 죽어나가는 상황이 가득했으나 나에게는 피곤함만 있고 인력은 없었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쓴 A4용지 101장 분량 비망록의 한 대목이다. 작년 말 월간 신동아를 통해 공개된 중증외상환자 치료 현실은 처참했다.

▷비망록은 공적(公的)일 수도 있고 사적(私的)일 수도 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은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쓴다”고 했다. 안종범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재직 2년 동안 63권의 수첩을 작성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등의 면담이 끝나면 대통령 전달사항을 빼곡히 받아 적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제작하라는 것도 있다. 검찰은 이를 사초(史草) 수준이라고 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17차 공판에서 검찰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2008년 1월부터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 인사 청탁을 하고 거액을 건넨 과정이 적혀 있다. 2월 23일에는 ‘통의동 사무실에서 MB 만남. 나의 진로에 대해서는 위원장(금융감독위원장), 산업B(산업은행 총재), 국회의원까지 얘기했고 긍정 방향으로 조금 기다리라고 했음’이라 적었다. 청탁이 무산되자 3월 28일엔 이렇게 썼다. ‘증오감이 솟아난다. … 나는 그에게 30억 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이 전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팔성은 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맨으로 MB가 서울시장일 때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맡았다. 2008년 6월 결국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라 MB정권 금융계의 ‘4대 천왕’으로 불렸다. 안종범의 수첩은 사초에 가깝지만 일방적 전달사항을 적었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팔성의 비망록은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불순한 의도까지 엿보인다. 비망록의 본질이 헷갈리는 요즘이다.
 
이광표 논설위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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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팔성#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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