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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곡할 노릇”…슈퍼 폭염이 낳은 ‘오후 7시 마법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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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곡할 노릇”…슈퍼 폭염이 낳은 ‘오후 7시 마법의 해변’

최지선 기자,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송혜미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입력 2018-08-02 16:49수정 2018-08-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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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김희원 디지털뉴스팀 인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1일 오후 7시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땀에 젖은 회색 티셔츠를 입은 박정호 씨(58)가 노란 튜브를 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박 씨가 운영하는 파라솔 대여소는 이날 파라솔 300개 중 절반도 펴지 못했다. 튜브 300개 중 200개는 물 구경도 못하고 땡볕에 방치돼 있었다. 박 씨는 “지금까지 휴가철에는 파라솔이 없어서 못 빌려줬는데 올해는 절반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1일 오후 12시 반 경 부산시 해운대 해수욕장 모습. 피서객이 없어 파라솔을 다 펴지 못했고 튜브를 찾는 사람도 없다. 모래가 햇볕에 달궈져 행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박 씨의 속이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건 ‘오후 7시 마법’ 때문이다. 해가 질 무렵부터 해수욕장으로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 것. 이 시간이 되면 해운대해수욕장의 풍경은 낮과는 180도 달라진다. 박 씨는 “낮에도 좀 나오시지…”라고 아쉬워하며 영업을 마쳤다.

유례없는 ‘슈퍼 폭염’이 해수욕장 피서 풍경마저 바꿔놓고 있다. 바다수영 ‘피크타임’은 낮 12시에서 오후 3시 사이다. 예전 같았으면 ‘물 반, 사람 반’인 시간대다. 이 시간에 파라솔을 다 펴지 못하면 그날 장사는 낙제점이다. 하지만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계속되자 바다수영을 하는 사람 자체가 줄었다. 파라솔 대여소에서 일하는 방정걸 씨(67)는 “피서객이 줄어든 데다 돈을 안 내고 막무가내로 물건을 쓰려는 외국인들도 종종 있어서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한 낮 텅텅 빈 광안리 해수욕장
더위를 헤치고 바다까지 나온 피서객들도 파라솔 밑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김성현 씨(47·여) 가족은 작은 아이스박스에 이온음료와 과일을 챙겨왔다. 식사는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김 씨는 “모래밭이 프라이팬처럼 달궈져서 가게에 걸어 갈 수가 없다. 싸온 걸로 대충 먹었다”고 말했다.

불볕더위에 호객행위도 사라졌다. 해변에서 아이스크림과 돗자리를 파는 김모 씨(83·여)는 “더워서 낮 장사를 포기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김밥을 팔던 김모 씨(76·여)도 “10줄도 못 팔았는데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만 들어가야 겠다”고 말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종일 조용하던 해운대해수욕장에는 피서객들이 끊임없이 모래사장으로 밀려들어왔다. 해변으로 건너가는 건널목은 사람이 너무 많아 경찰이 신호를 통제해야 할 정도였다.

1일 오후 8시경 해운대 해수욕장이 야간 해수욕을 즐기러 온 피서객들로 가득하다.
야간 사람 많은 광안리 수변공원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구에서 휴가차 부산을 찾은 권성규 씨(40)는 아들과 함께 앉아 모래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권 씨는 “바다 앞까지 왔는데도 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호텔 수영장에서 놀았다. 해가 지고 나니 살만하다”며 웃었다.

상인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곳곳에서 “돗자리” “치킨”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는 그늘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피서객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낮에는 텅 비었던 화장실이 밤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른 해수욕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도 낮 피서객이 줄어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라솔 대여소를 운영하는 임주호 씨(37)는 “7월말 8월초에는 평일에도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붐벼야 하는데 너무 한산하다. 햇볕 때문에 늦은 오후가 돼야 해변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매출이 지난해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대천해수욕장 7월 피서객은 41만 명으로 작년의 절반 수준이다.
한 낮 텅 빈 대천 해수욕장
텅 빈 대천해수욕장 거리
당일치기 여행객이 증가한 것도 슈퍼 폭염의 여파로 보인다. 너무 덥다 보니 며칠씩 외박을 하는 게 부담스러워 아침에 왔다가 밤늦게 돌아간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장숙임 씨(73·여)는 “지난해 하루 15만 원 하던 방을 올해 5만 원에 빌려줬다. 방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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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송혜미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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