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꼬이자 분풀이? 北 “희떠운 훈시” 문재인 대통령 원색 비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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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안지키면 심판’ 발언 꼬투리
노동신문, ‘그 누구’로 칭하며 “감히 입 놀려댄다” 거친 공격
“여성 종업원 송환 안되면 이산가족 상봉 장애” 위협도
비핵화 디테일 싸움 기선잡기

북한이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에 나섰다. 문 대통령을 ‘그 누구’라고 칭하며 북-미 관계에 대해 “감히 입을 놀려댄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정은이 하반기 본격적으로 이어질 비핵화와 종전선언 세부 논의에 앞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해 미국에 간접적으로 부담을 주면서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 北 “운전자는커녕 조수 노릇도 못 한다”

노동신문은 20일 ‘주제 넘는 허욕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라는 개인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13일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발언을 정조준했다.

신문은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이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누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입을 놀려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주제 넘는 발언” “맹목과 주관으로 일관된 편견” “결과를 낳은 엄연한 과정도 무시한 아전인수 격의 생억지” “제 처지도 모르는 희떠운(분에 넘치고 버릇없는) 훈시”라며 맹폭격을 했다.

또 “운전자는커녕 조수 노릇도 변변히 하지 못한다”고도 비하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후에도 비핵화 실천 방안에 대한 진척이 없자 합의를 촉구한 것을 두고 “참견 말라”며 선을 그은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문 대통령을 원색 비난한 것을 두고 하반기 들어 북한의 대남·대미 전략기조가 변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6, 7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뒤 “일방적이고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 들고나왔다”고 비판한 지 2주도 안 돼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까지 비난한 것. 노동신문의 이날 보도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서울’을 본보기식으로 비난하고 압박하며 결국 워싱턴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에는 종전선언 양보를, 한국에는 민족공조를 강조하며 각종 지원을 거세게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탈북 여종업원 송환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일 “여성 공민(탈북 여종업)들의 송환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지 않으면 일정에 오른 북남 사이의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은 물론 북남 관계에도 장애가 조성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특히 북한은 “통일부 장관 조명균을 비롯한 현 남조선 당국자들의 철면피한 처사”라며 3∼6일 통일농구단을 이끌고 평양을 다녀온 조 장관을 콕 찍어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이 7월 27일 정전협정 65주년 전후로 한 미군 유해 송환부터 8·15 광복절 공동 행사 및 이후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등에서 다시 ‘몽니’를 부리며 몸값을 높이려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25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생사 확인을 담은 회보서가 순조롭게 교환될지 관심이 쏠린다. 남 원장은 “북한이 당장 미국에는 유해 송환 대가로 거액을 요구하고, 한국에는 평양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반대급부로 각종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단 태세 전환을 한 만큼 당분간 압박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답보상태 비핵화 ‘돌파구’ 모색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일 오전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 워싱턴으로 극비리에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실장의 방미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5월 3일 극비리에 워싱턴을 찾은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이번 방미에서 정 실장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싱가포르 회담과 이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세 번째 방북 이후 답보 상태인 북-미 간 비핵화와 종전선언 논의를 촉진하는 한편 남북 관계 진전의 속도 점검을 위해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산 석탄의 국내 유입 논란과 관련해 미 측의 오해를 풀기 위한 설명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북한#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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