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윤종]재난에 포함 안된 폭염… 대처 매뉴얼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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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거세게 몰아치거나 요란하진 않다. 조용히 사람들이 죽어나갈 뿐이다. 그래서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올해 폭염도 독하다. ‘1994년 대폭염’이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잠을 못 잘 지경”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잠만 못 자면 다행이다.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걸리는 사람만 한 해 2000여 명에 달한다.

사망 위험도 만만치 않다. 2003년부터 10년간 폭염으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293명)가 같은 기간 홍수, 태풍, 폭설로 사망한 사람(280명)보다 많다. 올해만 벌써 8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엔 국가 차원의 ‘폭염 대처 매뉴얼’이 없다. 폭염으로 가축들이 죽어도 다른 전염병 폐사와 달리 정부 차원의 보상금이 없다.

왜일까? 현행법상 폭염은 ‘재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서 재난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중 ‘자연재난’은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 가뭄, 지진, 황사, 조류 대발생, 조수, 화산활동이라고 규정돼 있다. 폭염은 빠져 있다.

매년 여름이 끝날 때마다 폭염을 자연재난에 넣어야 한다는 법 개정 요구가 있었다. 이를 반영해 18대 국회부터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한 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매번 흐지부지 지나갔다. 2012년, 2016년 개정안을 낸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측은 “폭염은 건강, 환경에 따라 피해가 다르고 개인의 노력으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반론 때문에 뒷전으로 밀렸다”고 설명했다. 관련 부처인 행정안전부도 같은 이유로 미온적이었다.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폭염을 4, 5단계로 세분화한 뒤 고위험 단계에 이르면 총리 등이 나서 적극 대응한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고령화로 개인이 폭염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조사결과 전 세계 인구의 30%가 1년에 20일 이상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폭염에 노출돼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29년 국내 폭염 연속일수가 연간 10.7일로 늘고, 폭염 사망자 수가 99.9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저소득 홀몸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은 경제적 이유로 냉방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찜통 같은 집에서 고통받는다. 이런 이들에게 알아서 폭염에 대처하라고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올해 정부는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데 긍정적이다. 행안부는 18일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법 개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여름이면 단발성 폭염대책을 넘어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폭염대책을 접할 수 있을까? 기대와 함께 의구심도 생긴다. ‘폭염 재난’ 논쟁이 매년 무더위와 함께 시작돼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져온 탓이다. 올해는 되돌이표 논쟁에 마침표를 찍기를 바란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폭염#1994년 대폭염#열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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