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일자리의 사이비 아군과 진짜 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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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일자리가 이번 정부의 업무지시 1호이니 일자리를 갉아먹는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우선 최저임금을 시간당 1000원 남짓 올렸다고 아르바이트생 잘라버리는 편의점 주인이나 치킨집 사장님이 해당된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건비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최저임금까지 고속으로 오른다니 이참에 아예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겨버리겠다는 전방, 경방 같은 제조업 사장님들도 일자리의 적이다.

고속도로 요금소를 완전 무인화하겠다는 발상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갇혀 하루 8시간씩 꼼짝없이 화장실도 못 가고 하루 2000명씩 별별 사람들을 다 상대하며 애들 학원비라도 벌어보려는데 그 자리마저도 없애려고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들 기계 팔아먹겠다고 남의 일자리를 걷어차는 그 무인화 기계회사 사장과 직원들, 그걸 도입하겠다는 공무원들은 공공의 적이란 말로도 모자란다. 서울시 지하철을 무인 운행하자는 사람들도 같은 계열이다.

근로시간 단축 이후 요즘 큰 기업들 회사 근처 삼겹살집, 호프집에 저녁 손님이 없어 주인과 그 종업원의 일자리가 간당간당한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초과근로수당이 줄어 호주머니가 가벼워진 만큼 저녁이 있는 삶을 집에서 보내겠다는 직원들이나 일찍 퇴근하라고 채근하는 대기업 사장님들은 정부 시책에 열심히 따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일자리 공공의 적에 포함되는 경우다.

반대로 일거에 무인화 사업을 백지화시켜 버리는 도로공사, 국민의 안전도 지키고 자신의 일자리도 지키는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서울지하철 노조는 그런 일자리의 적들과 싸우는 전사들이다. 은행지점 폐쇄에 대한 모범규준을 만들어 점포 폐쇄에 따른 소비자 불편은 물론이고 일자리 감소까지 엄격히 감시하겠다는 금융감독원, 경쟁력을 잃어버려 10조 원의 세금으로 지탱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이제는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도 불사하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일자리 지키기의 선봉장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일자리 정부라고 자처한 대통령 이하 공무원들이 앞장서고 여당이 입법으로 지원사격하고 일자리를 위해 머리띠를 싸매는 거대 노조들이 있으니 앞으로 대한민국 고용의 미래는 창창할까.

멀리는 마부들 일자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첨단 발명품이던 자동차의 속도가 마차보다 빨라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가 독일에 자동차산업과 일자리를 통째로 뺏겨버린 1860년대 영국을 참조하거나, 가까이는 드론산업에 온갖 규제를 갖다 붙였다가 중국의 드론공장 일자리만 왕창 만들어준 우리나라 사례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이와 반대로 공무원 수를 줄이고, 해고하기 쉽도록 제도를 고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의 노동개혁은 언뜻 보면 일자리의 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자리를 늘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자리에 대한 진짜 적은 정책에 내몰려 직원들을 줄이거나 공장을 옮기는 자영업자 중소기업 사장이 아니라 갖가지 명분을 갖다 붙여 기술 발전을 거부하거나, 표의 논리에 굴복하는 엉터리 정책들이다.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경제 문제다. 정치논리에 입각한 복지정책과 유사한 일자리 대책으로는 복지는 좋아질지 모르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 경우를 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왕창 줄었다. 일자리 만들기 전투에서 지금은 ‘돌격 앞으로’라는 용맹함보다 사이비 아군과 진짜 적을 구분할 줄 아는 현명함이 절실한 시기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일자리 정책#고속도로 요금소 무인화#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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