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문희상은 다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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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1. 부친의 선영 앞에 섰다. 울면서도 분한 기분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 제가 될 거라고 했잖아요. 제가 맞았잖아요.” 이날은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승리한 직후. 아버지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아들이 김 전 대통령의 휘하에 들어간 것을 생전 내내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들은 웃다가 울면서 소주를 따랐다.

#2. 여야가 격돌할 예산 관련 이슈가 터졌다. 몇몇 기자들이 국회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기자도 덩달아 따라갔다. 누군가의 사무실 앞에 섰다. “바쁜데 왜들 왔느냐”는 말도 잠시, 터져 나오는 논리 정연한 청산유수와 여야 가리지 않는 돌직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봉숭아학당’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사라진, 정치권 중진들의 대언론 정치 특강이었다. 여러 중진이 학당을 열었으나 배울 게 많아 이 학당이 최고 인기였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문희상 신임 국회의장이다. 문 의장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대개 “생긴 건 삼국지의 장비인데 머리는 조조다” “게을러 보이는데 머리 회전은 좋다”고 평한다. 그런데 기자의 인상과 기억은 좀 다르다. 자기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거나 심지어 마이웨이를 가면서도, 논리와 배짱으로 상대방이 어찌할 수 없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장비, 조조보다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으되 뛰어났던 조자룡과 더 비슷한 측면이 있다.

문 의장은 자신의 뜻이 맞다면 종종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말을 거스르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던 2004년 1월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 수십 명의 기자가 새해 인사차 점심을 먹으러 찾아갔다. 노 전 대통령이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강조하던 터라, 청와대 안팎에서 행사 자체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문 의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들에게 소주 한 잔씩 돌린 후 간이 노래방을 켜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보좌진이 말렸지만 문 의장은 “야, 집에 찾아온 손님과 술 한잔 못 하면서 무슨 정치를 하냐”며 호기롭게 노래를 이어 갔다. 이 장면을 본 한 기자가 장난삼아 수고비 조로 1만 원 한 장을 건네자 이를 이마에 붙이는 시늉을 해 박장대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문 의장의 이런 성격과 특징은 집권 2년 차 들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가 정국 운영을 독주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더욱 주목될 수밖에 없다. 특히 문 대통령을 ‘부하 수석비서관’으로 두고 비서실장을 해본 터라, 청와대와 여당이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잡아가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 의장이다. 취임 후 “이젠 국회의 계절이다”라고 한 건 이런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어떻게’다. 문 대통령은 이전의 ‘부하 수석’이 아니라 지지율 70% 안팎을 유지하는 현직 대통령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더 나빠질 수 없는 수준이다. 결국 문 의장이 특유의 논리와 설득으로 여야 정치권을 움직여 최소한 할 일을 하도록 해야 청와대에 뺏긴 주도권을 조금이나마 가져와 ‘국회의 계절’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정치 인생 마지막이란 각오로 정치 살리기에 몸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전직 국회의장들이 대부분 협치와 정치 복원을 내세웠지만 물거품이 된 것도 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문 의장이 이전에 들려줬던 ‘봉숭아학당’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미국에선 하원의장이 국회의장인데 공식 명칭이 ‘미스터 스피커(Mr. Speaker)’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의회를 대표해서 목청껏 웅변하고 설득하라는 거다. 그래야 의회가 행정부의 하수인이나 통법부가 안 된다.” 문 의장 본인은 물론 70주년 제헌절을 맞아 국회 스스로에게 던지는 ‘봉숭아학당’ 화두로 이보다 더 안성맞춤은 없겠다 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문희상#국회의장#봉숭아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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