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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핵폐기 1년도 안 걸려… 북한도 짧은 시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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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핵폐기 1년도 안 걸려… 북한도 짧은 시간 가능”

위은지 기자 입력 2018-07-16 03:00수정 2018-07-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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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북한도 비핵화를 하겠다는 진정한 의도가 있다면 (남아공처럼) 상대적으로 단기간 내에 비슷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82)은 이른바 ‘남아공식 해법’을 만든 인물이다. 1990년대 초 국제사회의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신속한 핵 폐기를 추진했던 남아공은 비핵화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 워싱턴 정가에서도 선(先) 핵 포기-후(後) 보상의 ‘리비아식 모델’의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공은 핵무기 제조에 성공한 후 이를 스스로 폐기한 유일한 국가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라 예상됐던 북한의 비핵화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세 번째로 방북했으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접견하지 못하고 돌아와 ‘빈손 방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6일 e메일로 인터뷰한 그는 “북한도 의지만 있다면 단기간 내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직접 해봐서 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직접 핵을 폐기한 그의 경험은 북핵 폐기 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
 
○ “북한도 의지만 있으면 신속 핵 폐기 가능해”

1980년대 남아공과 현재 북한의 상황은 유사점이 있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차별하는 흑백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당시 남아공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다. 또한 1975년부터 이웃 국가 앙골라에 5만 명의 쿠바군이 주둔하는 등 소련의 세력 확장으로 안보상 위협도 커지던 상황이었다. 인권 문제로 세계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북한도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다음은 일문문답.

―북-미 정상회담과 합의 내용을 평가한다면….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인 접근을 지지하고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을 환영한다. 하지만 한 번의 회담으로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는 조심해야 한다. 두 지도자는 서로 다른 이유로 회담에 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정치적인 성공을 기대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다뤄지고 싶었고, 국제사회가 가하는 제재의 압박을 완화하길 원했다. 또한 양측은 무엇이 합의됐고, 합의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잠재적인 핵무기들을 신속하게 해체하길 기대하는 반면 김 위원장은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응할 의도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남아공을 도와주겠다’는 공식적 약속이 없었는데도 어떻게 국제사회를 신뢰할 수 있었나.

“소련이 붕괴하고 앙골라에서 쿠바군이 철수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아공의 핵무기를 없앨 수 있었다.”

―경험에 비춰 볼 때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 북한 비핵화의 전제조건이 될 것으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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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제스처는 종종 국제적인 합의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비핵화로 향하는 구체적인 단계 이행에 따른 보답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미국은 이러한 제스처가 한국과 역내 다른 동맹국들에 잘못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남아공이 모든 핵무기와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북한은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남아공은 핵 능력을 꽤 빠르게 해체할 수 있었다.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북한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 비슷한 성공을 거두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 핵무기 보유 필요성 납득 안 돼 결국 자진 폐기

1980년대 후반 전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완화되면서 남아공이 마주했던 안보 환경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1988년 쿠바는 앙골라, 남아공과 평화 협상을 하고 앙골라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데 합의한다. 내부적으로는 흑인들의 폭동이 점점 거세졌다. 인종차별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던 남아공의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1989년 정권을 잡은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핵무기 폐기,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라는 큰 족적을 역사에 남기게 된다.

1990년 7월 비밀리에 시작된 핵무기 및 핵시설 비핵화 작업은 1991년 6월 말 끝났다. 1991년 7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남아공은 그해 11월부터 약 2년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115회 받으며 핵무기 프로그램 해체 여부를 검증받았다. 1993년 3월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남아공은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 6기와 개발 중이던 핵무기 1기를 모두 폐기했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남아공은 언제부터, 왜 핵무기를 개발했나.

“남아공 정부는 1970년대 초에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주요한 이유는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로 인한 위협이 점점 커졌고,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의 보호에만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아공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안 건 언제인가.

“1980년대 초 광물에너지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남아공의 핵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 듣게 됐다. 내 역할 중 하나는 핵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인 핵 농축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것만 알아야 한다’는 엄격한 방침 때문에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이었다.”

―남아공은 전쟁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했나.

“(남아공 정부의) 전략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전 세계에 남아공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그러면 서방 국가들이 (남아공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핵무기 폐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핵무기 프로그램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무기는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접전(bush warfare)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웃 국가의 수도에 핵폭탄을 날린다는 아이디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두 가지 주요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NPT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 국제사회 관계 정상화 위해선 북한 인권 개선 고려해 봐야

‘핵무기 완전 폐기’를 선언했던 1993년,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와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기한 공로를 인정받은 덕이다.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의 조치들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없지 않다.

―남아공 정권이 핵무기를 폐기하기로 한 결정 뒤에는 차기 흑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

“사실이 아니다. 앞서 말한 이유로 핵을 폐기하게 됐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을 어떻게 보느냐.

“남아공의 경우, 주요한 안보 위협은 외부의 침략보다도 수백 년간 남아공 국민들을 갈라놓았던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데서 왔다.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뒤에야 우리는 국민들, 이웃 국가들, 그리고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북한 비핵화의 핵심도 내부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모든 남아공 국민들에게 진정한 민주적, 헌법적 권리를 확장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것과 같이 북한도 국민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확장할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한국 및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이 사회주의를 버리거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김 위원장은 베트남이나 중국이 성공한 것처럼 시장 개혁을 고려할 것이다. 이러한 개혁은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가져오지 않을지 몰라도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큰 진전이 될 것이다.”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한국은 한반도의 안정 유지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하며,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북한 정권의 예측 불가능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군사적 준비 태세를 계속 유지해야 하며 미국과의 동맹 관계도 잘 지켜야 한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남아프리카공화국#북미 정상회담#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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