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복판에 아이 두고 캐리어만 챙겨…위험천만 공항내 교통안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5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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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국제선청사 앞 5차선 도로에 한 가족이 차에서 짐을 꺼내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주차는 도로 맨 오른쪽 
차선에서 해야 한다. 통행 차량과의 충돌을 막으려는 조치다. 이 차량처럼 4차로에 세우면 불법 주정차로 간주돼 4만~5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부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12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국제선청사 앞 5차선 도로에 한 가족이 차에서 짐을 꺼내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주차는 도로 맨 오른쪽 차선에서 해야 한다. 통행 차량과의 충돌을 막으려는 조치다. 이 차량처럼 4차로에 세우면 불법 주정차로 간주돼 4만~5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부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12일 오후 8시경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2층 앞 도로로 검정 벤츠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속도를 줄이며 들어왔다. 이 차량은 맨 오른쪽 5차로가 아닌 4차로에 차를 세웠다. 청사 앞에는 ‘주차금지’ 팻말이 줄지어 있었지만 5차로에는 이미 차들이 빽빽이 주차돼 있었기 때문이다.

벤츠 차량에서 내린 남자아이는 트렁크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낸 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이 양 옆으로 차량 여러 대가 스쳐 지나갔다. 부모도 차에서 짐을 내리느라 도로 한복판에 선 아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듯 보였다. 아이가 서 있던 4차로는 이틀 전인 10일 택시운전사 김모 씨(48)가 과속으로 달리던 BMW 차량에 치인 바로 그곳이었다. 사고 지점 옆 BMW가 부딪힌 도로 왼쪽 가장자리 옹벽에는 당시 BMW 차량이 남긴 검은색 충돌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김 씨는 이 사고로 닷새째 의식불명 상태다.

● 도로 한복판에서 짐 꺼내
12일 김해국제공항 국제선청사 앞 도로에는 ‘주차금지’ 경고문이 있었지만 30분 넘게 차를 세워두는 사례가 여러 번 목격됐다. 그
 탓에 사람을 내려주거나 짐을 꺼내기 위해 정차하려는 차량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밀려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부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12일 김해국제공항 국제선청사 앞 도로에는 ‘주차금지’ 경고문이 있었지만 30분 넘게 차를 세워두는 사례가 여러 번 목격됐다. 그 탓에 사람을 내려주거나 짐을 꺼내기 위해 정차하려는 차량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밀려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부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김해공항 BMW 과속 충돌 사고 이후 공항 내 교통안전 부실 실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항 청사 앞 도로는 일반도로와 똑같이 세심한 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리거나 급한 마음에 과속이 만연하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본보 취재팀이 12일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앞 도로를 살펴본 결과 도로 진입 전 제한최고속도 시속 40km를 준수하는 차량이 드물었다. ‘절대감속’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무색했다. 김해공항은 국제선 청사를 지나야 국내선 청사로 갈 수 있는 구조인데 목적지별로 차로가 구분돼 있지 않았다. 출장으로 김해공항을 자주 찾는 박모 씨(28)는 “과속단속 장비가 없어 속도제한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앞에서는 3차로 한복판으로 10여 명의 사람들이 자주 쏟아져 나왔다. 호객행위를 하는 주차대행업체 직원들과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었다. 김포공항은 김해공항처럼 차종별로 도로가 구분돼 있지 않았다. 한 차로에서 일반 승용차와 택시, 버스가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수시로 뒤엉켰다. 인천국제공항은 택시 전용 승하차장과 차로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한 흰색 아우디 승용차는 청사 바로 앞인 3차로에 차를 세운 뒤 10여 분 넘게 정차했다. 남성 운전자는 트렁크에서 캐리어 2개를 꺼내 아내와 딸에게 전한 뒤 한 명씩 포옹을 했다. 이들 옆으로 차들이 빠른 속도로 밀려 들어왔다. 이 남성 운전자는 가족들을 공항 안으로 들여보낸 뒤에도 차를 세워둔 채 휴대전화로 한참 통화를 했다.

공항 측은 승객 편의를 위해 도로 맨 오른쪽 차로에서 잠깐 동안의 정차를 허용한다. 하지만 ‘하차 즉시 출발’이 원칙이다. 다른 차량들이 이용할 수 있게 공간을 빨리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우디 차량이 3차로를 점유하고 있는 사이 다른 차량들은 도로 한가운데인 2차로에 차를 세워야 했다.

13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청사 앞 도로에 주차대행업체 직원들이 도로로 나와 공항 이용객들에게 주차대행을 권하고 있다. 공항 
청사 앞 도로는 일반 차로와 동일한 법규정이 적용되는 곳이다. 차량이 오가는 청사 앞 도로로 나오는 행위는 무단횡단과 다를 바 
없다.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국내선청사 앞 도로에 주차대행업체 직원들이 도로로 나와 공항 이용객들에게 주차대행을 권하고 있다. 공항 청사 앞 도로는 일반 차로와 동일한 법규정이 적용되는 곳이다. 차량이 오가는 청사 앞 도로로 나오는 행위는 무단횡단과 다를 바 없다.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모두가 손놓은 공항 내 교통안전

공항 내 도로는 구조가 복잡해 사고 위험이 높다. 제한최고속도를 20~40km로 둔 이유다. 도로 이용자는 과속과 음주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단속이 되지 않는다. 단속 주체는 경찰이지만 도로와 시설물이 공항공사 소유여서 경찰이 수시로 드나들기에 부담스럽다.

인천과 김포공항은 전담 경찰관을 운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김해공항 등 나머지 공항은 지역경찰에 단속을 맡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운전자들의 과속, 불법 주정차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올 1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 앞에서는 정류소를 지나친 셔틀버스가 무단으로 후진해 주차관리직원을 치여 숨지게 한 사고도 있었다.

본보가 이달 초 전국 공항 음주단속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인천공항만 월 2회 단속할 뿐이었다. 김포공항경찰대 관계자는 “수학여행이 많을 때에는 학교 요청으로 불시에 버스기사를 대상으로 단속을 하지만 음주측정기가 없어 인근 경찰서에서 빌려온다”고 말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항 내 도로는 지속적인 교통안전 관리가 필요하지만 경찰과 공항공사는 전담 인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시설물 설치와 단속 등을 통한 공항 내 도로 안전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담 경찰서가 있는 日공항▼

일본 도쿄의 관문인 하네다(羽田)공항과 지바현 나리타(成田)공항에는 모두 전담 경찰서가 있다. 도쿄공항경찰서, 나리타공항경찰서가 맡고 있다. 관할하는 지역은 일반 경찰서보다 작지만 실질적인 교통안전 관리를 위해선 공항 업무에만 특화된 경찰서를 둬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다.

일본이 공항안전을 촘촘하게 관리하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공항도 한국처럼 여객터미널은 물론 화물터미널, 호텔, 게스트하우스, 철도역, 행정관청 등이 모여 있어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

인천국제공항에도 경찰조직이 있기는 하다. 지난해 항공편 승객 6208만여 명이 오고간 인천공항경찰단 인원은 210여 명. 의경 100여 명을 빼면 110여 명 수준이다. 연간 이용객이 4068만여 명인 나리타공항경찰서 인원 140여 명보다 적다. 연간 8541만여 명이 다녀가는 하네다공항에는 250여 명의 경찰관이 근무한다.

일본은 공항 내 교통사고 실태도 정밀히 파악한다. 도쿄, 나리타 두 공항경찰서는 매월 홈페이지에 관내 교통사고 최신 통계를 게시한다. 공항 내 교통사고 현황을 별도 관리하지 않는 우리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포공항은 서울 강서구에서 발생한 사고 중 일부로만 통계가 관리될 뿐이다.

공항 내 운전자들의 안전의식도 우리보다 철저하다. 일본 공항에서는 우리처럼 도로 중간에 정차하는 상황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버스와 택시는 반드시 지정된 위치에 멈춘다. 승객들도 차량이 도로 왼쪽 끝에 완전하게 정차할 때까지 기다렸다 타고 내린다. 차종별 정차 장소를 명확히 구분해 ‘도로 위 뒤엉킴’ 소지를 최소화한다. 일본항공(JAL), 전일본공수(ANA) 등 두 대형 항공사는 매년 봄과 가을 열리는 전국교통안전운동에 동참해 교통안전 계도와 홍보에 나선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부족한 인력과 조직으로 공항 내 교통안전 관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면이 있다”며 “반면 일본은 전담 관리자가 만약의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의 가능성까지 감안해 사고 예방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부산=서형석기자 skytree08@donga.com·인천=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박희영 인턴기자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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