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눈엔 ‘이상한’ 놀이터… 아이들이 만든 ‘꿈의 공간’이랍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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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꿈을 담은 놀이터’ 서울 신현초
공사장 같은 모래더미에서 뛰놀고 나무 다리 아래서 꼬리잡기 놀이
아이들이 디자이너와 함께 설계… 서울교육청, 올해 4곳 더 짓기로

11일 서울 중랑구 신현초교 아이들이 ‘꿈을 담은 놀이터’(꿈담터)의 ‘바람의 언덕’(왼쪽), ‘트리하우스’(오른쪽)에서 뛰어놀고 있다. 꿈담터는 신현초교 아이들이 설계와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1일 서울 중랑구 신현초교 아이들이 ‘꿈을 담은 놀이터’(꿈담터)의 ‘바람의 언덕’(왼쪽), ‘트리하우스’(오른쪽)에서 뛰어놀고 있다. 꿈담터는 신현초교 아이들이 설계와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우리 놀이터에는 정해진 건 없어요. 마음대로 놀면 돼요.”

배유리 양(7·신현초1)은 2m 높이의 모래더미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며 외쳤다.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모래더미를 가리켜 아이들은 ‘바람의 언덕’이라고 불렀다. 친구들은 배 양을 뒤따라 ‘모래 미끄럼틀’을 탔다. 어른이 정해준 규칙 같은 건 없었다. 손과 옷에 모래가 잔뜩 묻었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11일 서울 중랑구 신현초에 ‘이상한’ 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이 놀이터에는 놀이기구가 보이지 않았다. 정글짐이 들어서야 할 자리엔 흙으로 만든 언덕이, 시소가 있어야 할 자리엔 나무 다리가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 신현초를 ‘꿈을 담은 놀이터’(꿈담터) 제1호로 선정했다. 2016년 전남 순천에 자연 환경을 그대로 살린 ‘기적의 놀이터’를 만들어 유명해진 편해문 놀이터 디자이너가 제작을 총괄했다.

꿈담터는 총 5개 구역으로 조성됐다. 단 한 곳을 제외하면 놀이기구가 없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신현초 아이들이 설계, 제작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트리하우스 △하얀세상 △추억놀이터 △바람의 언덕 △레인보우 놀이터 등 구역 이름도 직접 지었다.

○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다섯 구역 중 교실 건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트리하우스는 연못 위를 지나가는 나무 다리가 있는 구역이다. 플라타너스 두 그루 덕분에 그늘이 많다. 아이들은 나무다리 밑으로 기어 다니며 꼬리잡기도 하고, 다리 위에서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불렀다.

이곳은 아이들이 가장 공들여 만든 공간이기도 했다. 편 디자이너는 아이들에게 기존 연못가를 어떻게 바꿀지 직접 설계하도록 맡겼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학생 제작단이 기초 디자인을 구상하고, 모형을 제작했다.

아이들의 의견은 실제 트리하우스에 반영됐다. ‘나무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소망한 아이들이 나무에 맘껏 다가갈 수 있도록 다리는 나무를 감싸 안는 모양이다. 개장 전 시설을 점검한 어린이 감리단은 “트리하우스에서 난간을 넘나들며 놀다가 떨어지면 바닥이 보도블록이라 다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완공된 트리하우스에는 딱딱한 보도블록 대신 우레탄 바닥이 깔렸다. 제작에 참여한 이승민 군(10·신현초4)은 “예전 놀이터는 친구 집에서 노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우리 집처럼 마음대로 개미잡기, 배 띄우기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어른들 걱정하던 ‘위험’, 아이들에겐 ‘모험’


“이게 놀이터라고요?” 학부모들은 꿈담터를 처음 봤을 때 황당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 키의 두 배에 이르는 흙더미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파묻히면 어떡하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보다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1학년, 4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이정희 씨(39·여)는 “아이들이 ‘엄마, 새 놀이터에서는 미끄럼틀 없이도 미끄럼틀 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아이들과 어른의 생각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흙더미에 깃발을 꽂으면서 ‘땅따먹기’라며 즐거워했다. 편 디자이너는 “아이들이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은 오히려 유익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을 통해 아이들이 더 큰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취지를 살린 ‘모험 놀이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신현초는 학교 주변에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 점을 고려해 꿈담터를 오후 4시까지 개방하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올해 추가로 4곳의 꿈담터를 더 지을 예정이다. 이날 꿈담터 개장식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재정이 허락하는 한 놀이터를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편 디자이너는 축사를 자작시로 대신했다.

“놀이터는 어린이가 몸으로 시를 쓰고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힘껏 뛰노는 어린이의 땅입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한유주 인턴기자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꿈을 담은 놀이터#꿈담터#신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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