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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부형권]‘갑어치’하는 갑은 갑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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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부형권]‘갑어치’하는 갑은 갑질도 없다

부형권 국제부장 입력 2018-07-11 03:00수정 2018-07-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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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잘나가는 여성 장관이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어렵게 일정을 조정해 휴가를 냈고, 남편과 둘만의 낭만적 기념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2녀 1남 자녀가 걱정이다. 10대인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더욱 그렇다. 장관은 집을 떠나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내 비서관이 너희들 챙기러 집에 올 거야.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거든.”

그날 저녁 직장 업무를 마친 비서관(남성)은 아이들을 살피러 장관 집에 들렀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없는 틈을 타 집 안에서 공놀이하던 아들이 비서관과 부딪치며 발목을 삐었다. 비서관은 이 사실을 장관에게 보고하고 아들을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치료받게 했다. 아이들은 난감한 비서관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에게 ‘아들이 다친 건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까먹었나요”라고 놀리듯 말한다. “내 잘못은 아니지”라고 반박해도 아들은 “전적으로 당신 잘못이죠”라고 우긴다. 상황 정리를 도와주러 달려온 공보관(여성)도 “당신이 어른이고 책임이 있잖아. 그러니까 설사 당신 잘못이 아니어도 결국 당신 잘못인 거지”라고 거든다. 비서관이 “(다리 다쳐 움직이지 못하니까) 숙제하긴 더 좋네”라고 말하자 아들은 “농담하세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최고의 핑곗거리가 생겼는데…”라며 무시한다.

여성 국무장관의 활약상을 극화한 미국 드라마 ‘마담 세크리터리(Madam Secretary)’의 한 장면이다. 요즘처럼 한국 사회에서 갑질 논란이 크게 불거질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다시 보며 생각하게 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같은 한국의 여성 장관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국 기준으로 보면 비서관은 갑질을 제대로 당했다. 은혼식 휴가를 떠난 장관의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아이들은 그런 그를 버릇없이 대했다. 스스로 놀다가 다친 아들에 대한 책임까지 억울하게 져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국에도 저런 갑질이 있는데, 왜 한국처럼 갑질 논란이 불거지지 않는가?’ 전문가들에게 물으니 “그는 구체적인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이 명기된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에 서명했을 것이고, 그 기술서 안에 저런 업무까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다. 실제로 비서관은 국사(國事)로 바쁜 장관 대신 자녀들 학교를 다녀오기도 하고, 장관과 이웃 주민들의 사소한 마찰도 앞장서 해결한다. 장관이 사적(私的) 소모시간을 최소화해 공적(公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정식 업무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한국 기준으론 갑질인데, 미국 기준으론 그냥 일이다.

한국도 미국처럼 직무기술서를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작성하면 이 많은 갑질이 사라질까. 그렇진 않을 듯싶다. 갑질은 가해자 갑의 착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갑을 위한 을의 업무는 더 중요한 일을 하고,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갑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존중과 존경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을보다 강한 갑의 권한은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을 더 잘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그래야 을의 봉사를 받을 정당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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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마담 세크리터리’는 텍사스주와 멕시코 간 긴박한 외교 분쟁 때문에 은혼식 여행을 하루 만에 접고, 언제나처럼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고 국무부로 돌아온다.

“아드님이 발목 다치고, 숙제도 안 한 건 다 제 잘못입니다.”(비서관)

“집 안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공놀이를 한 건 그 녀석이잖아요. 숙제도 결국 하긴 했어요.”(장관)

을보다 큰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하는, ‘갑어치’ 하는 갑이라면 갑질도, 갑질 논란도 없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마담 세크리터리#갑질#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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