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핫바지유?”…간결했지만 묵직했던 ‘수사의 달인’ JP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3일 1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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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말을 참 잘했다. 정치인이야 원래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JP의 말은 무게감이 달랐다. JP를 설명하는 ‘수사의 달인’이란 수식어는 ‘영원한 2인자’만큼이나 유명하다. JP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간결했지만 묵직했고, 단순했지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그의 말을 되짚으면 반세기 한국 정치사가 보인다.

“자의 반, 타의 반.”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 작업 중 내부 반발로 외국으로 떠나면서)

이후에도 운명처럼 JP를 따라다니는 상징적인 한 마디가 됐다. JP는 공화당 창당 자금 의혹 사건에 연루돼 이 말을 남기고 외유를 떠났다. 호사가들은 ‘자의’로만 움직였던 혈기왕성했던 JP가 처음으로 ‘타의’로 움직인 시점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후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으로 2차 외유에 올라야만 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상황을 빗대면서)

민주화 바람이 불자 ‘프라하의 봄’에 빗댄 ‘서울의 봄’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박정희 치하에서 영원한 2인자였던 JP에게도 봄이 오는 듯했다. 그러나 신군부의 등장으로 좌절하게 되고 JP는 그 착잡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후에도 JP는 변화무쌍한 고사성어로 심경과 생각을 자주 암시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승부를 벼르면서 ‘줄탁동기(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고,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1994년 민주자유당 대표 시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인자’ JP 처세의 핵심인 ‘스스로 낮추기’를 대표하는 말이다. 당시 김영상(YS) 대통령을 향해 이처럼 극진한 표현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YS 측근들이 개혁의 걸림돌로 그를 지목하고 몰아낼 거란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몸을 바싹 낮추며 1년가량 당 대표직을 유지한 JP는 1995년 2월 결국 YS에게 날을 세우며 탈당한다.

“우리(충청도민)가 핫바지유?”

(1995년 6월 서울 장충체육관 자유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김윤환 정무장관은 1995년 한 기자로부터 “충청당이 생기면 보수적 정서로 볼 때 대구·경북(TK)과도 통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TK가 핫바지냐”며 받아넘겼다. 그런데 이 말을 대전의 한 지역지가 ‘김 장관 충청도 핫바지 발언 물의’라는 식으로 오보했고, JP는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두고 전당대회에서 “우리가 핫바지유”라고 민심을 자극했다. ‘핫바지’ 발언은 결국 충청도민의 마음을 흔들어 그해 지방선거와 이듬해 총선에서 자민련에 몰표를 던지게 만든 동력이 됐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싶다.”

(2000년 자신이 총재로 있던 자민련이 총선에서 패한 뒤 당시 민주당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이 “JP는 지는 해”라고 말하자)

누가 좀 쉬라고 할 때면 “휴식은 죽은 뒤에 썩도록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JP의 ‘정치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해 민주당 이인제 고문은 DJP 공조가 복원되자 “진 태양은 다시 뜬다”고 슬쩍 말을 바꾸기도 했다. JP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말을 하며 ‘킹메이커’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했다. 평소 “타다 만 장작이 아닌 완전한 재가 되길 꿈꾼다”던 JP의 ‘정치 태양’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 타올랐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2015년 부인 고(姑) 박영옥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당시 조문 온 정치 후배들에게 “실업(實業)은 실업하는 사람이 열매를 따먹는 게 실업이고, 정치인은 열매 맺어놓으면 국민이 따먹지 정치인이 먹는 건 없다”면서 했던 말이다. JP는 그 해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사진집 출판기념회에서 “정치의 열매를 국민들께 충분히 돌려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역사 앞에 떳떳하다”며 이 말을 반복했다. 당시의 발언은 정치 역정 43년의 소회를 밝히는 JP의 표정과 희로애락이 담긴 사진 500여 장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 했어.”

(2015년 부인 고(姑) 박영옥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평소 박 여사를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했던 JP가 조문 온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했던 말이다. JP는 “집사람은 나와 함께 장지에 나란히 눕게 될 것”이라며 “먼저 저 사람이 갔는데 나도 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눈물을 닦았다. JP는 다음해 가락종친회 행사에 참석해 “죽어서 고향에 묻히는 게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며 부인과 합장하겠단 뜻을 거듭 밝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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