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밀실 아닌 광장에서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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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내용이 뭡니까? 뭘 어떻게 한다는 거죠?”

지난 토요일 저녁, 한 전직 고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문무일 검찰총장을 만나 수사권 조정 문제를 언급했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매체의 기사를 뒤져봐도 수사권 조정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기사는 한 건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검찰 후배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내용을 아는 게 없다’고 한다”고 했다. 기자 역시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공개한 대화 내용이 전부”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전직 고검장은 “이런 중요한 문제를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게 옳은가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검찰 정보가 정확하고 빠르다는 건 옛말이다. 요즘 검찰은 민망할 정도로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 본보는 13일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안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단독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직후 검찰에서는 내용이 사실인지, 출처가 어디인지 묻는 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

18일 오전까지도 검찰에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함께 만들었다는 수사권 조정안을 직접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문 총장이 본보 보도 이튿날인 14일 박 장관을 만나 논의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전달받은 게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검찰은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려고 해도 내용을 몰라서 이야기를 못 하는 상황이다.

비대한 권한을 가진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검찰의 수사권은 국민이 맡겨 놓은 권한이므로 민의를 따라 쪼개거나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개혁이 밀실에서 이뤄져야 하는지는 유감이다.

밀실 논의는 보안은 유지될지언정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봐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왜 국민이 똑같은 내용으로 검경에서 두 번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옳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검찰에서 경찰이 조사한 내용을 다시 조사하는 경우는 기소를 할 필요가 있을 때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조서는 법정에서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로 쓸 수 없다. 반면 검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고문이나 강압, 회유 등 부당하게 작성된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 따라서 중복 조사 문제는 증거법을 고쳐야 할 문제지,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중복 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검찰에서 작성한 자백 조서가 있어도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사건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미 교통사고, 절도, 폭력 등 증거관계가 확실한 사건에서는 원칙적으로 중복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검경의 반발을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개혁 대상인 검찰을 논의 테이블에 앉히는 일이 부적절하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은 검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이 이해 당사자다. 일방적으로 조정안을 발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논의 내용을 공개하고 문제점은 없을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검경 수사권 조정안#수사권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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