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팀장과 따로” “이젠 회식 안가” 직장인들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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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근무’ 앞두고 업무외 활동 최소화 움직임

“‘팀점’ 보이콧 선언했어요.”

직장인 김성경(가명·34) 씨는 12일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팀점’은 같은 팀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을 말한다. 김 씨가 일하는 회사에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 때 팀장과 직원이 함께 식사하는 게 관례처럼 내려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씨가 동료 2명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 전 회사가 내린 비(非)근로시간 자율 보장 지침이었다. 다음 달 1일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에 대비한 조치다. 김 씨는 “팀점을 하면 상사 잔소리 듣느라 괴로웠다. 사생활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이제는 점심시간만이라도 자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헬스클럽에 다닐 계획이다.

○ 비근로시간 ‘사수 작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회식과 야유회, 체육대회, 퇴근 후 상사의 업무 연락 등 그동안 근무나 다름없던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겠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전날 밝힌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 활동들은 근로시간이 아니다.

업무 외 일이긴 하지만 회사 상사 및 동료와 관계된 모든 것을 뜻하는 이 활동들은 지금까지는 근로와 비근로의 경계에 있었다. 판례에 따르면 이 같은 비근로시간에 근로자는 사용자의 지휘 및 감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항상 상사의 지시와 감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정모 씨(29·여)는 다음 달부터 부서 등산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등산모임은 관행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했다. 정 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실시로 업무 외 활동을 최소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등산모임에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조직 분위기에 미칠 영향이 마음에 걸린다. 정 씨는 “선배들이 서운해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직장인 이모 씨(26·여)도 회식 보이콧을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는 회식이 있으면 당일 처리할 업무량을 늘리거나 외부 미팅을 잡는 방법으로 최대한 늦게 참석했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이런 방법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아예 회식 자체를 불참하는 걸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자칫 회사 내 ‘왕따’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 ‘자투리’ 근로는 여전

그러나 회사의 근무환경이나 분위기 탓에 쉽사리 비근로시간 지키기에 나서지 못하는 직장인도 많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상사의 요구를 바로 거절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퇴근한 뒤의 업무 연락같이 근로시간으로 잡히지 않는 ‘자투리 근로’는 사실상 막을 수도 없다.

중소기업 영업직인 강모 씨(42)는 업무 성격상 휴일에도 상사나 거래처에서 연락이 온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별로 없다. 강 씨는 “한 번 전화가 오면 같이 있는 가족은 통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한다. 휴일에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법률이 생기지 않는 한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돼도 ‘휴일 근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2년 차 안모 씨(32)는 “일과 휴식의 균형, 워라밸을 찾아 삶을 충분히 누리자는 취지라고 생각하지만 근로시간만 줄인다고 해서 집단주의적인 직장문화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
#주52시간 근무#회식#활동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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