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예측 불가능하기를 원해…괜찮은 포커플레이어는 아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7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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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뉴욕 거리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남자가 한 손엔 큰 채찍을, 다른 손엔 ‘비이성적임(irrational)’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돈을 주지 않아도 구걸하는 사람들이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친구처럼 한다면 난 돈을 줄 것이다. 트럼프는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73)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스타일을 뉴요커지에 실린 만평을 통해 소개했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동과 의사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세일러 교수는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하기를 원한다. 포커에서는 물론 그래야 하지만 트럼프가 괜찮은 포커플레이어라고 말할 순 없다”고 평가했다.

30일 서울에서 열리는 2018동아경제포럼 기조 연사로 참석하는 세일러 교수와의 인터뷰는 15일(현지 시간)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일주일 후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자신을 “훌륭한 포커플레이어”라고 주장했다.

―왜 괜찮은 포커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건가.

“포커는 원칙이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혼자 굉장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척하는데, 난 그게 뭔지 모르겠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트럼프에게 장난을 치고 있을까 걱정스럽다.”

―북한 비핵화 협상에 행동경제학 이론을 적용할 수 있나?

“트럼프나 김정은 같은 사람들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려고 할 때의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이거나 예측 가능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 인간’도, 그렇다고 ‘심리적 인간’도 아니다.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한 다음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나에겐 ‘이해 불가’다.”

그는 사건 결과를 알고 난 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후견편향(hindsight bias)’를 ‘먼데이모닝 쿼터백킹(주말 미식축구 경기를 본 뒤 월요일 아침 쿼터백 이렇게 공을 던졌어야 한다고 뒷말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정부의 북핵 문제를 비판하는 것도 그렇다는 것이다. 세일러 교수는 “트럼프는 어떻게 했을 것이라는 건 말하지 않고 본인이 했으면 좋은 협상을 맺었을 거라고만 말한다”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정상회담 이후 모두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알맹이가 없을 수 있다. 둘 다 그렇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보기에 한반도 문제의 해결책은 통일이다. 고통이 따르지만 결국엔 좋은 일이라는 게 독일 통일의 교훈이다. 김정은이 우리를 얼마나 놀라게 할지 지켜보자. 난 트럼프가 한국에서 성공하기를 응원한다. 한국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니 희망을 갖자.”

―당신을 포함해 11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를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다.

“찬성하는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이 40명의 경제학자들에게 관세 부과에 대해 물었더니 트럼프 정책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100%였다. 자유무역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올바른 길은 패자를 돕는 방법을 찾는 거다. 값싼 한국산 세탁기를 구입해 이득을 본 모든 사람들은 미국 세탁기 공장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재취업이나 재교육프로그램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경제는 유연해야 한다. 무역정책을 보면 트럼프가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 특성이 나타난다.”

―노벨상을 안겨준 넛지(Nudge) 이론의 핵심인 선택설계란 무엇인가.

“선택설계는 환경설계다. 환경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축도 선택설계의 작은 사례다. 건물 디자인이 이용자들의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건축학교에서 인간행동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웹사이트 개발, 학업과정도 선택설계를 이용한다. 책을 쓸 때도 그렇다. 선택설계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세일러 교수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의 넛지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했다. 그는 “건물 내부에 우물처럼 공간을 파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통을 만들었더니 교수들의 소통이 늘고 운동 효과도 생겼다”고 말했다.

―선택설계 성공 사례는 무엇인가.

“미국 퇴직연금(401K) 신청서에 가입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탈퇴하려면 따로 체크하게 만드는 작은 변화로 ‘가입률 90%’의 효과를 봤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모든 게 인간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넛지’ 책 제목을 ‘모든 게 중요하다(Everything Matters)’로 지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

―선택의 기본값을 바꾸면 인간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건가.

“서점의 책이 500만 권쯤 된다면 선택장애가 일어난다. (온라인서점인) 아마존에는 책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선택설계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주제별로 책을 분류하고 구매이력을 참고해 추천해준다. 선택지가 많은 상황에서 선택설계를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고객이 떠난다. 금융회사들은 아마존에서 배워야 한다.”

―선택설계를 어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나.

“당뇨병 환자들이 약을 제때 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몸에 장치를 심어 혈당이 떨어지면 스마트폰에 신호를 보내 약을 먹게 해주는 기술이 있다. 혈당이 올라가면 약이 저절로 주입되는 기술은 더 좋다. 우리 모두 주머니에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를 넣고 있다는 사실을 활용하면 많은 기회가 있다. 기술과 행동경제학을 결합하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세계 200여 곳의 정부가 넛지 관련 부서를 두고 실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인간 선택을 돕고 오류를 막아준다는 건가.

“신용카드 발급은 기계적으로 이뤄진다. 기계는 외모, 거주지 등의 편견이 없어 훨씬 공정하다. 결제 대금을 제때 갚을 능력이 있는지만 따진다. 병원의 의사 결정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자율주행차는 훨씬 더 안전하다. 음주운전, 졸음운전도 안 할 거 아닌가. 사고는 나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인공지능(AI)에 대한 걱정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처럼 컴퓨터가 우리를 통제할거라 믿는다. 그건 먼 훗날의 얘기다. 순진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아질 기회가 위험해질 기회보다 크다. AI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반복작업을 하는 톨게이트 요금 징수와 같은 일은 사라지되 사람 손길이 필요한 간병인 같은 일은 남아 있을 것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없나?

“미국의 선거(2016년 대선)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걱정스럽다. 소셜미디어서비스(SNS)가 AI의 영향을 받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조심해야 한다.”

―심리적 편향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쁜 일을 위해 넛지를 쓰는 것이 안타깝다. 이건 ‘슬러지(sludge)’다. 자동차도 유용한 물건이지만 차량 테러에 이용된다. 끔찍한 일이지만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다. 기업이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면 안 된다.”

― 강한 규제에 찬성하나?

“난 ‘적절한(appropriate) 규제’에 찬성한다. 난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간 부분은 규제 당국보다 늘 똑똑하다. 은행들은 규제를 피해가는 법을 곧 찾아낼 것이다. 규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보공개와 같은 투명성 개선이 규제보다 낫다. 영국에서 기업이 남녀 임금을 공개하게 했더니 규제 없이도 변화가 일어났다. 남성 임금을 여성보다 세 배나 주는 가게에 여성 고객은 가지 않을 것이다.”

―2008년 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더 나아졌나

“과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테크버블(닷컴버블)’이 터지고 2008년 위기가 발생하기까지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이 터지면 교훈을 얻지만 또 다른 일이 일어난다. 2008년 위기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을 뿐이다. 똑같진 않겠지만, 위기는 또 온다.”

―지난달 부스 경영대학원에서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플랫폼 독점 문제를 논의하는 반독점 컨퍼런스가 있었다.

“기업이 지나치게 커지는 걸 걱정해야할 이유는 많다. 하지만 크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애플은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지만 품질이 좋아서 성장했다. (기업) 크기를 줄여야 하니 상품을 나쁘게 만들라고 할 수는 없다. 삼성이 열심히 노력해서 가격을 더 낮추고 더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으면 세상은 더 좋아진다. 성공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페이스북보다 애플에 대한 우려가 적은 건 같은 독점이라도 애플 쪽의 해악이 덜하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가 잘 해결하길 바란다.”

―트럼프 지지자에게 트럼프 관련 뉴스만 추천하는 식의 뉴스 알고리즘의 문제도 있다.

“독점은 위험하다. 미국에는 폭스, CNN, MSNBC가 있어 성향에 따라 골라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겹치는 부분이 없다. 저커버그에게 조언을 하자면 이용자들이 선호 분야를 조정하게 놔두라는 거다. 난 트럼프 찬양 기사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저런 부분은 잘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읽고 싶다.”

―노벨상 수상소감을 얘기할 때 상금을 최대한 비이성적(irrationally)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투자는 어떤가.

“그거야말로 비이성적이다.(웃음) 비트코인을 확신할 수 없다는 건 100퍼센트 확신한다. 정말 미스터리다. 사람들이 합법적 활동에 그걸 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불안정한 화폐가 왜 필요한가. 말이 안 된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면 수강 소감대로 비이성적으로 쓴 것이니 하나 사보자. 골프 치러 가서 사람들이 작은 내기를 하자고 하면 ‘오케이, 1 비트코인’이라고 말하겠다.(웃음)”

세일러 교수는 리더의 오류를 막으려면 기록과 글쓰기, 조직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분간 새 책을 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뉴욕=박용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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