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때 4회이상 지원 받았던 96곳, 문재인 정부 들어 43곳이 제외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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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분석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처음으로 올해 3월 말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는 시민단체 명단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부·기업의 우파단체 지원이 논란이 됐는데, 문재인 정부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행정안전부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자료를 토대로 동아일보가 박근혜 정부 5년간 지원받은 571개 시민단체,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선정된 218개 시민단체 등 789개 단체를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 때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던 우파 성향 단체에 대한 지원은 끊기고, 문재인 정부 관련 친여·좌파 성향의 단체들이 대거 새 지원 대상에 편입된 경향이 확인됐다. 또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인권운동 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고, 대북지원 및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 네 차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 전국자전거캠페인’ ‘DMZ 평화누리길 이어달리기’ 사업 등을 이유로 비영리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해 말에도 사업 지원을 요청했지만 올해 3월 명단에서 빠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단체의 한만정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자전거 유세단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 1999년 설립된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는 박근혜 정부에선 지원 대상에 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보조금을 받았다. ‘국제개발협력 민간단체 책무성 증진 사업’ 명목으로 3500만 원을 받은 것.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4월 이 단체 윤현봉 사무총장을 주브루나이 대사로 임명했다. 윤 사무총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571개)와 문재인 정부(218개)가 자금을 지원한 시민단체 789개를 동아일보가 처음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정부별로 큰 차이가 났다. 지난 정권의 혜택을 받은 시민단체는 현 정부 들어 지원이 끊겼고 현 정권과 연관성이 있는 시민단체가 새로 혜택을 받았다. 이른바 정부 코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박근혜·한미동맹·우파 빠져

박근혜 정부 5년간 지원을 받은 시민단체 571개 중 네 차례 이상(4, 5차례) 지원금을 받은 단체는 총 96개다.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선정 대상을 발표한 3월 비영리단체 지원 명단에선 43개 단체가 사라졌다. 24개 단체는 신청했지만 탈락했고 나머지 19개 단체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조사에 따르면 지원 대상에서 빠진 44개 단체 중 28개 단체는 대체로 우파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와 인연이 있는 단체가 대거 탈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홍익인간(弘益人間)의 효 정신을 함양하고 실천해 국민정신을 개조’하자는 목적으로 설립된 효나라운동중앙회가 대표적이다. 지난 정부에서 네 차례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엔 탈락했다. 전국에서 ‘효 인성교육지도사 양성 교육’을 주도하는 사업을 많이 했고 특정 정치 성향을 보인 적은 없었다. 다만, 이 단체 중앙회장인 최성규 목사는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된 이력이 있다.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점 사업이었던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도 빠졌다. 세계가나안농군운동본부는 2017년에는 라오스 현지 농목축업 시범마을 조성사업 예산으로 4000만 원을 받는 등 박근혜 정부에서 네 차례 정부 지원을 받았다. 2001년 설립돼 근로 봉사 희생을 3대 목표로 효(孝) 사상, 국가 번영 등을 강조해 온 이 단체는 해외에서 새마을 시범마을 조성 사업을 벌이는 활동을 많이 했다.

한미동맹, 군사·안보 관련 단체의 탈락도 두드러졌다. 양국 우호 증진을 위해 1991년 출범한 한미우호협회는 박근혜 정부 5년간 모두 지원을 받았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인 한철수 예비역 대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1년에 두 번 한미우호의 밤 행사를 개최하는데 지난해엔 김병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주한미군 장병, 미 대사관 직원 등이 참석했다. 이 단체는 ‘한미우호증진 및 홍보활동’을 하겠다며 사업계획을 제출했지만 탈락했다.

한 대표는 지난달 우파 원로들이 발족한 ‘대한민국 비상국민회의’에 이름을 올렸다. 비상국민회의는 “문재인, 임종석 등 종북·주사파들이 청와대를 장악했다. 저들은 대한민국을 체제 변혁하여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로 뒤엎으려 하고 있다”는 내용의 창립취지문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군사·안보와 관련된 국제전략교류협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등도 신청했지만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서정갑 대표(국민행동본부), 이갑산 대표(한국시민단체네트워크) 등 대표적 우파 활동가가 운영하는 단체도 대거 탈락했다.

○ 김대중·노무현·민주당은 진입

박근혜 정부 5년간 단 한 번도 지원을 받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롭게 지원받은 신규 단체는 40개다. 이 중 상당수 단체(15개)가 어떤 식으로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관련 인사 등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개 단체를 활동 내용으로 분류할 때 종합 정치사회 단체는 소수였다. 그 대신 노동, 민주화, 국제·대북교류 단체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새로 선정된 국제푸른나무는 2010년 창립된 국제구호 및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다. 남북 교류가 거의 끊어졌던 박근혜 정부에서도 거의 매해 북한에 인도적 목적의 방북을 지원하면서 수해물품 전달, 장애인 의료용 자재를 지원해 왔다. 이 단체 구성원을 뜯어보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코드’가 숨어 있다.

국제푸른나무의 고문인 한완상 전 부총리(김대중 정부)는 2016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상임고문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의 형인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노무현 정부)도 국제푸른나무의 고문이다.

민주당 의원들과 연결된 단체도 곳곳에 있었다. 한국YMCA전국연맹은 박근혜 정부 때 한번도 지원받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정부 지원을 받았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2003년부터 19대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인 2011년까지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신규 지원 대상인 동북아평화연대는 이부영 전 의원이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이 단체 기획위원으로 근무하다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에 입성했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는 ‘항일음악회 다시 부르는 희망의 노래’로 신규 선정됐는데 이 단체의 고문단에는 민주당 이종걸 안규백 의원이 포함돼 있다.

통일교육개발연구원은 김안제 서울대 명예교수가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통령 직속 지방이양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노무현 정부 시절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환경정의는 올해 ‘개별입지 집적지역 주거환경만족도 평가 시범사업’으로 4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고문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지원이 끊어진 단체 및 신규 진입한 단체의 활동 분야 카테고리를 비교해 볼 때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 선진화시민행동 같은 종합 정치·사회단체 또는 군사·안보·북한인권 단체에 대한 지원은 끊어졌다. 반면 에코유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등 환경·청소년·소수자 관련 단체가 다수 새로 편입됐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단체가 같은 성향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정부가 바뀌면 버려지는 악순환이 시민사회의 미성숙한 부분을 드러낸다”면서 “정부 지지 세력을 만들 목적으로 시민사회를 지원한다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박훈상 tigermask@donga.com·홍정수 기자
#문재인 정부#박근혜 정부#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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