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방사능 오염 없다… 갱도 앞 개울물 마셔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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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현장

핵실험장 폭파 순간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이 폭파되며 목조 자재와 돌멩이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이날 지휘소 시설 7개 동이 폭파됐다. 길주=사진공동취재단
핵실험장 폭파 순간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이 폭파되며 목조 자재와 돌멩이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이날 지휘소 시설 7개 동이 폭파됐다. 길주=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폭파 쇼’에 나선 24일, 오전 폭파를 마치고 찾아온 점심시간 다국적 기자단의 눈에 군 막사 처마에 달린 제비집이 포착됐다. 한 기자가 “제비는 방사능에 민감하지 않은가”라고 묻자, 북측 관계자는 “그만큼 (이곳에) 방사능이 없다는 얘기다. 방사능에 민감한 개미도 여기에 엄청 많다”고 답했다.

3번 갱도 앞 개울에선 동행하던 북한 관영 조선중앙TV 기자가 한국 취재진에 개울물을 마셔보라며 얘기했다. “파는 신덕샘물은 pH(산도) 7.4인데 이 물은 pH 7.15라 마시기에 더 좋다. 방사능 오염은 없다.”

북측은 이날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과 관련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들의 질의에 “문제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풍계리 일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귀신병’이 돈다는 소문을 의식한 듯했다. 국제사회는 갱도 지하에 축적된 방사능 오염물질이 외부로 흘러나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북한은 풍계리가 안전함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했다. 북측 관계자뿐만 아니라 기자단에 방호복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사현장에서나 쓸 법한 노란색 안전모만 하나씩 지급됐다. 그 대신 실제 위해성을 측정할 방사선량 측정기는 압수했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이번 폭파로 인한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갱도 내부 암반에 구멍을 뚫고 폭약을 설치해 터뜨리는 내폭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4번 갱도를 폭파할 때 중간중간 상세히 설명을 하며 기자단의 이해를 도왔다. 폭파 전 갱도 안을 공개하고, 폭파 이후 현장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당초 약속했던 전문가 참여를 거부한 것을 의식한 듯 ‘검증에 성의를 보였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

핵실험 안한 3번 갱도 공개 24일 북한 군인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뒤로 폭파 작업을 위한 전선들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다. 길주=사진공동취재단
핵실험 안한 3번 갱도 공개 24일 북한 군인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 앞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뒤로 폭파 작업을 위한 전선들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다. 길주=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25일 공개된 폭파 영상을 보면 북한이 핵실험장 내 갱도를 재사용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파하진 않았을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갱도 입구 폭파 수준으로 폐기 흉내만 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북한은 갱도 폭파에 앞서 전체 길이가 1∼2km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갱도 중 입구 주변만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1∼2km에 달하는 갱도 내부를 모두 폭파해 붕괴시켰다면 후폭풍이 너무 커서 기자단이 폭파 현장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관람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측 관계자는 “5차례 성과적 핵실험을 한 갱도”(2번 갱도) “핵실험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된 갱도”(3번) “큰 핵실험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특별히 준비해뒀던 갱도”(4번) 등으로 각각의 갱도 폭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핵화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의미 있는 ‘폭파 쇼’를 보였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풍계리의 마지막 폭파가 있은 지 6시간여 만에 김정은에게 한껏 격식을 차린 공개편지를 보내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화약 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풍계리 폭파 쇼는 빛이 바랬다.

길주=외교부 공동취재단 / 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풍계리 핵실험장#북한#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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