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송충현]상생법이 상생 아닌 분열 일으켜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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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산업2부 기자
송충현 산업2부 기자
전북 군산시에선 최근 쇼핑몰을 여는 문제를 두고 큰 소란이 일고 있다. 군산의류협동조합, 군산어패럴상인협동조합, 군산소상인협동조합 등 3개 단체가 지난해부터 롯데몰 군산점 개점을 3년 연기해 달라며 사업조정신청을 냈다. 롯데몰은 이미 2016년 12월에 상생기금을 20억 원 내기로 했기 때문에 지난달 27일 예정대로 개점을 했다. 하지만 3개 단체는 이 돈으로도 부족하다며 강경하게 나왔고, 정부는 영업 4일 만에 사업개시 일시정지 명령을 내렸다. 3개 단체는 16일에 이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3개 단체가 자진 철회 이유로 내세운 건 “일단 지방선거가 끝난 뒤 롯데와 상생기금 규모를 재조정하기 위해서”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한 상인회 관계자는 기자에게 “상인 조합끼리 의견 조율이 잘 안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2개 단체는 롯데의 조건을 전향적으로 협의하자는 입장이지만 1개 단체는 강성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27만 명의 소도시 군산은 올해 이런저런 소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월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지역경제는 말도 아니게 위축됐다. 이런 곳에 연면적 8만9000m² 규모의 대형몰이 문을 연다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며 환호해야 정상이다. 롯데몰 군산점의 직원 760명 중 85%인 650명은 군산 주민이다.

하지만 민심은 사분오열됐다. 몰이 영업을 잘해야 지역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과 자영업자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주장이 맞섰다.

생계가 달린 사안이라 안 그래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더 복잡해진 건 관련법이 이중삼중의 규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조정신청에 나선 3개 단체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을 근거로 행동하고 있다. 이 법상으론 몇 개의 조합이 사업조정신청을 하든 정부는 모두 받아줄 수밖에 없다. 롯데몰 군산점처럼 여러 관계자가 사업조정신청을 할 경우 한 곳만 강성으로 나와도 사업이 표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몰이 들어서는 인근의 상인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 안에만 있으면 사업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

롯데는 점포를 만드는 데 1800억 원을 투자하기 전에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군산시, 군산소상공인협회와 협의해 20억 원의 상생기금을 내기로 하고 대규모 점포 개설 등록을 했다. 이때 소상공인협회와 협의하면 된다고 제시한 것도 군산시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단체들이 상생법을 근거로 조정신청을 해버리니 기존 법을 따랐던 롯데로선 이중삼중의 협상을 해야 하는 구조다.

일자리 만들기는 현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다. 하지만 수백 명의 직원과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협력업체의 일자리가 이중삼중의 규제 탓에 위기에 놓여 있다. 상생법이 지역상인과 유통업체 모두에 뚜렷한 실익을 남기지 못한 채 민심만 분열시킨다면 제도 개선을 생각해볼 시점이다.
 
송충현 산업2부 기자 balgun@donga.com
#군산#일자리#상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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