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재희]존경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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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산업1부 기자
김재희 산업1부 기자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취재를 위해 사흘간 식장을 지키면서 놀랐던 대목은 비공개 가족장이라 조문을 할 수 없는데도 LG 일반 직원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 점이었다. 한 직원은 “평소 직접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애도를 표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고 했다. 서울 시민이라고만 밝힌 한 남성은 빈소의 LG 관계자들에게 “고인은 의인상을 만들어 의로운 시민들을 챙기신 분이다. 일반 시민도 조문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한 시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한 중년 여성도 있었다. 10여 년 전 작은 회사를 차린 것을 계기로 고인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서 몇 차례 마주쳤는데, 늘 먼저 다가와 “회사 잘되고 있지? 잘돼야지”라며 말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고인 주변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겠어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까지 챙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잘돼야지’라는 짧은 한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나 총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오너 일가의 갑질이나 폭언, 폭설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갑질 피해의 대상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과 함께 일했던 직원이나 기사들이었다. ‘을’을 향한 부와 권력의 남용에 많은 사람은 감정을 이입하며 공분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재벌 갑질은 단골 소재가 됐다. 가상 시나리오와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이 상승 작용을 하며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고 있다. 많은 기업인이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묻지 마식 반기업 정서’가 경영 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기업인들의 하소연은 하소연대로 맞는 측면이 있다. 극히 일부의 일탈을 모든 기업인에게 덧씌워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구본무 회장 못지않게, 또는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기업인도 숱하게 많다. 다만 구 회장이 타계한 후 쏟아진 각종 휴먼 스토리에 국민이 감동하는 모습은 ‘반기업 정서’도 결국 기업인 하기 나름이라는 평범한 교훈을 역설한다.

고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의를 갖추되 모든 사람을 진심을 갖고 대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단골식당을 찾으면 종업원에게 1만 원, 2만 원이라도 쥐여줬고,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LG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이유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된 평판과 존경 때문이다. 많은 기업인이 고인의 생전 행보를 깊이 음미해 보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모처럼 훈훈한 미담을 안기고 떠난 고인이 부디 영면하길 바란다.
 
김재희 산업1부 기자 jetti@donga.com
#구본무#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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