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빅게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 주간동아
  • 입력 2018년 5월 20일 10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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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간계 아직까진 유효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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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빅게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예측은 과거 일을 제대로 분석해야 좀 더 정확해진다. 분석은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정보가 틀리면 분석은 물론, 예측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100% 거짓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잘못된 판단은 살짝살짝 어긋난 정보가 누적돼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5월 16일 오전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소했다는 것이 큰 뉴스가 됐다. 그러나 전날 오후 미국에서는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 빅 뉴스였다. 둘 가운데 더 큰 뉴스는 세계적으로 관심이 쏠린 북·미 정상회담의 불발 가능성이다.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 취소와 함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거론했는데, 한국에서는 남북고위급회담 취소만 집중 보도했다.

살짝살짝 어긋난 정보들

서울과 워싱턴은 시차가 13시간이다. 북한은 13시간이 지나 한국도 오후가 됐을 때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비슷한 내용을 다시 발표했다. 그때부터 한국 언론은 북·미 정상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고 한 내용을 크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3시간 전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 취소와 함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았다.

5월 13일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5월 초 동중국해에서 한국 선적의 유조선이 북한 유조선을 만나 계류해 있는 것을 포착해, 한국 유조선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에 따라 제공이 금지된 물품을 북한 유조선에 환적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봤다. 환적이 이뤄졌으면 한국 유조선은 가벼워져 흘수선이 올라왔어야 하는데, 그러한 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 이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한국 언론에서 작게 보도됐다. 몇몇 매체는 짤막하게 ‘외교부 당국자가 조사한 결과 불법유류 환적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일본 측에 이미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해명은 남북 유조선이 공해상에서 계류했다는 것을 한국이 시인한 셈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유조선이 공해상에서 북한 유조선과 나란히 계류한 이유부터 밝혔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이설주는 저녁 만찬에 참석하고자 평화의집에 도착했다. 이설주는 자신을 맞이해주던 문재인 대통령 부부를 향해 “김 여사님께서 소파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을 쓰셨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 부부의 화답이 있었는데, 이 대화는 방송으로 그대로 생중계됐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김 여사까지 관여했고, 그 일을 이설주까지 알 정도로 남북은 깊이 협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 담판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행사를 치른 것이란 뜻이 된다. 남북한은 목적이 있어 이 행사를 치렀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언론은 이에 대한 추적 취재를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추천했다. 그러자 4월 30일 트럼프가 ‘Numerous countries are being considered for the MEETING, but would Peace House/Freedom House, on the Border of North & South Korea, be a more Representative, Important and Lasting site than a third party country? Just asking!’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 문장은 ‘여러 나라를 회담장소로 고려하고 있다. 남북한 경계에 있는 평화의집/자유의집이 3국보다 대표성이 있고 중요하며 연속성이 있는 곳이 될 수 있나? 그냥 물어보는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3국을 회담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판문점이 더 낫다는 제안을 받자, ‘과연 그런가’란 의심성 자문(自問)을 하며 가볍게 거절해버린 것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판문점은 어떠냐는 깜짝 제안을 내놨다’는 전혀 다른 보도가 나왔다. 미국이 판문점을 회담장소로 정했으면 유엔사를 구성하는 주한미군을 통해 경호를 강화하는 작업을 바로 했어야 하는데, 그러한 작업은 전혀 없었다. 이 보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싱가포르를 회담장소로 발표한 후 ‘비로소’ 사라졌다.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면 천안함 폭침 같은 북한의 도발에 한국군 지휘관들이 제대로 응전할 수 있다. 사진은 폭침된 천안함을 인양하는 모습. [동아DB]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면 천안함 폭침 같은 북한의 도발에 한국군 지휘관들이 제대로 응전할 수 있다. 사진은 폭침된 천안함을 인양하는 모습. [동아DB]

남북한+중국 對 미국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한은 상당히 가까워졌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동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중국 다롄에서 다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것을 한국 정부는 지지했는데, 이는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반적 구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과 러시아가 탈락하고 ‘남북한+중국 대 미국’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이러한 구도는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만들어졌다. 5차 핵실험 후 북한은 반복해서 미사일을 쐈는데, 그때마다 미국은 북한을 압박했다. 문재인 정부의 실력자가 “미국이 준비한 군사옵션은 심각했다”고 할 정도로 상당한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미국 국내법으로 중국을 조여, 중국을 대북제재에 동참하게 했다. 이에 중국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따라줄 것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도 한반도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로 같은 노선을 걸었다.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한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방향을 정하고 유리한 대미협상을 위해 억류된 미국인을 석방하는 ‘통 큰’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화답하면서도 목줄을 더 죄는 조치를 취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하여금 “북한 핵은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가져와야 한다”는 말을 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이 나온 상태에서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로 가는 것은 항복을 위해 여행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 카드로 응수했다. 미국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 일자는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이미 윤곽이 잡혀 있었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일자를 발표하기 전 5월 22일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것 역시 북·미 정상회담을 내부적으로 확정한 다음 내린 결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인은 행사를 하려고 돈을 쓰지만, 사업가는 돈을 벌려고 행사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3차 한미정상회담을 화려하게 치를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북·미 정상회담도 최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만들어 자신이 승리자임을 과시하려 한다. 그것으로 미국 중간선거를 돌파하고 정치 스캔들에 대한 관심도 돌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동상이몽이 된다. 그는 “합의와 실행은 별개 문제다. 북핵 사찰과 완전한 폐기를 의미하는 실행은 수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니 정치적으로는 득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합의를 하는 데 주력한다. 북핵을 미국으로 가져오려는 노력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자신이 승리한 모드로 바꾸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이간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대화 국면에서도 예정된 군사 활동을 실시했다. [동아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대화 국면에서도 예정된 군사 활동을 실시했다. [동아DB]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펼치는 현 외교술을 ‘이간책(離間策)’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묵인해 북한의 국력을 소진케 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강화한 뒤 중국을 제재에 동참시켜 북·중 관계를 어느 정도 갈라서게 만들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유화적으로 가져가고자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다양한 요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예정된 훈련과 한미연합사가 참여하지 않는 군사 활동은 강화했다. 미국은 1월 8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6·25전쟁 참전 16개국을 포함한 20개국의 외무장관을 모아놓고 대북 공동군사작전을 논의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다시 위기가 닥칠 때 군대를 보낼 수 있는 나라를 모집했는데, 16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6·25전쟁 참전 16개국을 미국은 ‘16개 전력공급국’이라 부른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16개 전력지원국이 보낸 함정과 초계기가 북한을 출입하는 배를 감시·추적하고 있기에, 일본 언론의 보도처럼 북한 선박이 다른 나라 배를 만나 환적하는 일이 거의 차단되고 있다.

이러한 군사 활동에 한국이 빠질 수는 없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오해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를 지을 수 있는 장비를 경북 성주에 들어가게 했다. 이러한 한국 측 행동이 북한의 의심을 사게 된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진정을 파악하기 힘들어지니, 자신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5월 16일처럼 북·미 정상회담을 연기할 수도 있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간계가 먹혔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의 ‘통 큰 행보’는 강경파를 자극할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김 위원장은 강경파와 멀어질 수 있다.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간계에 걸려드는 것이다. 중국조차도 아직은 마땅한 역전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지식을 갖고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판문점선언이다. 이 선언이 유효하려면 한반도는 정전체제로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반도는 정전체제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정전체제를 유지하려면 군사정전위원회(정전위)는 물론이고 남북한 움직임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가 가동돼야 한다. 그러나 두 위원회는 1991년 북한이 무력화한 후 전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정전위는 각 5명의 대표로 구성돼 있었다. 유엔군은 미군 2명, 영국군 1명, 한국군 2명으로 대표단을 꾸리고 미군 장성을 수석대표로 임명했다. 북한군과 중국군은 3 대 2로 대표단을 만들어 수석대표는 북한군 장성이 맡았다.

정전체제 vs 평화체제

5월 15일 미국 ABC 뉴스가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abcNEWS 캡처]
5월 15일 미국 ABC 뉴스가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abcNEWS 캡처]

동유럽 공산국가에 이어 소련 붕괴가 일어난 1991년 인사권을 가진 유엔사령관이 처음으로 한국군 대표를 수석대표로 임명했다(황원탁 한국 육군소장). 그러자 북한은 정전체제 파기를 선언하며 정전위 개최를 거부했다. 그리고 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자 판문점에 있는 중국군 사무소를 없애며 중국군 정전위 대표단을 쫓아내버렸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맡고 있는 북한 측 중감위도 역시 내쫓았다.

북한은 정전위의 통신채널도 끊어버렸다. 이 때문에 북한에 알려야 할 사항이 있으면 일직장교가 문서를 만들어 군사분계선에 갖다 놓은 뒤 북한 측에 가져가라고 통보하고 있다. 북한이 가져가지 않으면 확성기로 문서 내용을 읽어준다. 정전위와 중감위가 무력화됐다면 정전체제는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한반도가 열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유엔사 주축인 미군의 힘 때문이다.

유엔사로 위기 때마다 고통 받고 있는 것은 한국군이다. 정전체제가 아닌 상태에서 천안함이나 목함지뢰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는 침략에 해당한다. 이에 한국군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자위권 행사 범위는 그 나라가 결정하니, 한국은 강력한 응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엔사가 있으면 유엔사가 만든 교전규칙 범위에서만 해야 한다. 이 규칙은 정전체제 유지를 제1 목표로 하니 자위권 행사를 크게 제한한다. 공격을 받았을 때 소화기로 대응하는 것 정도만 허용하는 식이다.

그래서 한국군은 항상 당하기만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인데, 평화체제가 형성돼 유엔사가 사라진다면 한국군 지휘관들은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응전할 수 있다. 생사가 위협받는 순간에 행사하는 자위권은 정당하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이라 청와대도 이것을 막기 어렵다. 이러한 자위권 행사가 열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너뜨렸어도 자위권 행사를 제한하는 유엔사를 유지하는 것이 더 큰 평화를 보장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노선은 과연 더 큰 평화를 보장해줄 것인가. 그 해답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북핵 폐기를 어느 정도 약속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테다. 분명한 점은 상당 기간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39호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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