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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의 갯마을 탐구]〈3〉희망 찾아 독일로, 그리움 따라 남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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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의 갯마을 탐구]〈3〉희망 찾아 독일로, 그리움 따라 남해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입력 2018-05-18 03:00수정 2018-05-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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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여느 때처럼 빌헬름 엥겔프리트 씨는 반려견을 앞세우고 해변을 산책했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천연기념물인 방조어부림 숲을 거닐다가 몽돌해변에 앉은 노인은 한참 동안 수평선 너머를 바라본다.

몇 개월째 경남 남해 물건마을에 머무르며 민속조사를 하던 나는 노인의 뒷모습에 그리움이 배어 있음을 느꼈다. 하루는 그의 옆에 말없이 앉았다. 그때 노인은 자신을 ‘빌리라 부르라’며 웃어 보였다.

이후 빌리의 집을 방문했다. 빌리 할아버지와 춘자 할머니는 남해 독일마을에 가장 먼저 입주한 가정이다. 빌리는 아내와 결혼 후 줄곧 독일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생은 아내의 나라에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왔단다. 그의 이름인 ‘엥겔프리트’는 ‘평화의 천사’라는 의미이다. 남해의 맑은 공기와 멋진 풍경을 누리다가 천사처럼 아내의 곁에서 죽을 거라며 웃었다.

춘자 할머니는 파독 간호여성으로 살다가 남해로 왔다. “1971년 서독으로 가보니 말이 안 통하잖아요. 기숙사 방문 앞에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갔는데 독일인 동료가 매일 방문을 두드려서 신발을 가리키며 중얼거려요. 신발에서 냄새가 나서 그러는 줄 알고 자주 빨았죠. 나중에 무슨 뜻인지 알게 됐죠. 신발을 방에 넣어두라는 말이었어요.”

남해 독일마을은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여성들의 정착촌이다. 파독 광부를 한 김 씨 아저씨는 독일에서 사업으로 성공했다. 사업체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한국으로 왔다.

“독일에서 40년을 살았지만 한국이 그리웠어요. 온돌방과 음식에 대한 향수가 제일 컸죠. 여기 오니까 한국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았어요. 그래도 아침은 독일식으로 먹어요. 한국에 오니 이제는 독일 햄과 빵, 치즈가 생각나요.”

파독 간호여성인 박 씨 할머니는 간호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보건소에서 일하다가 외국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서독행을 택했다.

“서독 생활 초창기에 ‘닥터 지바고’를 보러 갔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는 바람에 한참을 돌아 극장에 도착했죠. 사람들이 나와 있어서 끝난 줄 알고 기숙사로 돌아왔어요. 영화를 보고 온 동료들에게 물으니 1편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잠깐 사람들이 나온 거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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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가장 앞줄에 있는 것이 이 파독 근로자들이다. 지금까지 이들을 1960, 70년대의 울타리에 가둬뒀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서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도 아니고, 외화 획득이나 돈벌이만을 위해 고된 일을 견뎌내고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겨낸 것도 아니다. 그 시절, 서독은 희망의 땅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땅이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세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들의 어깨에 올려둔 거창한 구호와 무거운 짐을 내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때이다. 그리움을 따라 남해로 찾아왔지만 이 땅 역시 그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젊은 날, 꿈을 찾아갔다가 그리움을 따라 다시 왔다. 긴 여정의 종착점으로 남쪽의 따뜻한 섬을 택한 노년에 평안이 깃들기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독일#남해 독일마을#파독 광부#정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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