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틀리면 “판 깬다” 위협하는 北, 이러니 진정성 의심받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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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열기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북-미 정상회담도 취소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은 어제 새벽 회담을 10시간 남겨두고 전통문을 보내 한미 연합 맥스선더 공군훈련을 ‘북침 전쟁소동’이라고 주장하고 “미국도 조미(朝美)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일방적 핵 포기만 강요하려 드는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재고려’까지 거론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강경모드는 일단 고전적인 협상 수법으로 보인다. 협상력을 높이고 상대를 길들이기 위해 때 되면 한 번씩 써먹는 벼랑 끝 전술인 것이다. 북한은 1월에도 예술단 점검단 파견 중지나 금강산 합동문화공연 취소를 한밤중에 일방 통보하는 무례를 저질렀다. 이미 닷새 전부터 열리고 있는 연례적 방어훈련을 뒤늦게 트집 잡은 것이나 탈북자의 이른바 ‘최고존엄’ 비난을 문제 삼은 것도 북한이 과거 늘 내세우던 핑곗거리다.

북한으로선 무엇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흘러나오는 대북 강경 발언들이 거슬렸을 것이다. 미국이 ‘선(先) 핵 포기’ ‘리비아식 핵 반출’은 물론 생화학무기와 인권문제까지 문제 삼으며 요구 수위를 올리자 먼저 남측과의 회담을 제물로 삼으면서 미국까지 겨누고 나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전날 중앙외사공작위원회를 열어 ‘국제정세 변화에 적절한 대응’을 주문한 직후여서 중국 지도부와의 교감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위험한 도박까지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볼턴과 같은 자들”이라며 비난 대상을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로 한정한 것은 일단 미국 반응을 떠보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김계관도 “미국이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수뇌회담에 나오면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온당한 대접’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미의 반응을 보면서 핵실험장 폐쇄 공개를 취소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런 북한의 반발에도 한미 군 당국이 맥스선더 훈련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B-52 전략폭격기의 훈련 불참을 밝힌 대목은 한발 빼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도 이미 ‘이해한다’고 밝힌 한미 연합훈련이다. 원칙적인 대응만이 북한의 상투적 전술을 무력화하는 방법이다. 그래야 북한도 이런 몽니가 스스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자신의 발목을 잡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북 비핵화#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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