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GM에 장기투자 계획 제시 요구… ‘먹튀’ 차단장치 마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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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비 넘긴 GM사태, 남은 쟁점은

한국GM 협력사도 “한숨 돌렸다” 한국GM 노사가 23일 임금 및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서문 인근에서 협상 타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사 합의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GM 협력사도 “한숨 돌렸다” 한국GM 노사가 23일 임금 및 단체협약에 잠정 합의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서문 인근에서 협상 타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협력업체 직원들이 노사 합의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GM 노사가 자구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라는 파국은 면했다. 이제 한국GM 경영정상화의 향방은 노사가 맞붙었던 첫 고비를 넘어 한국 정부와 KDB산업은행, 미국 제너럴모터스(GM) 간에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는 ‘머니게임’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GM이 자금 지원을 요구한 시한인 27일까지 복잡하고 민감한 안건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와 산은은 한국GM에 대한 ‘뉴 머니’(신규 자금) 투입을 결정하기에 앞서 GM으로부터 10년간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장기투자 계획을 받아내고, 차등 감자를 요구해 GM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할 방침이다.

○ 노사 극적 타결했지만 갈등 불씨는 남아

23일 노사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 잠정 합의한 데 따라 한국GM은 미국 본사로부터 급전을 수혈받아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넘기게 됐다. 이달 6일 지급하기로 했던 지난해 성과급 잔여분 720억 원과 함께 25일 사무직 임금, 27일 희망퇴직자들에 대한 위로금 약 5000억 원, 협력사 부품 결제대금 등을 지급할 예정이다.

GM이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 배치하기로 한 신차 2종은 실제 생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평공장에 배치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내년 말부터, 창원공장에서 만들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은 2022년부터 생산될 예정이다.

노사가 막판 합의를 이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노사는 군산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뒤 남은 인원을 다른 공장으로 전환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남은 인원을 어떻게 전환 배치할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하기로 해 양측의 갈등이 되살아날 수 있다. 부평과 창원공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00여 명 수준으로 군산공장 직원 680명을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GM-산은, ‘머니게임’ 본격화

갈등의 여지는 남았지만 정부는 일단 노사 합의를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정부와 산은은 한국GM의 노사 간 합의를 존중한다”며 “협력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구조조정 3대 원칙하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실사를 진행하고 GM 측과 경영정상화 방안을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3대 원칙은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주주, 노조 등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지속 가능한 경영정상화 계획 마련이다. 이 중 현재까지 해결된 것은 노조의 고통 분담뿐이다. 나머지 문제는 한국 정부와 1, 2대 주주인 GM, 산은이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정부와 산은, GM 간 협상은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GM과 산은은 1월부터 GM이 향후 10년간 투자하기로 한 28억 달러(약 3조 원)의 투자 방식과 한국GM이 본사에서 빌린 차입금 27억 달러를 해결하는 방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앞서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산은에 “27일까지 투자 확약서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동걸 산은 회장은 “20일쯤 나올 한국GM의 중간 실사보고서가 만족스러울 경우 27일까지 구두 약속이든 조건부 양해각서(MOU)든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직까지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중간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아 시한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 정부·산은 “10년간 장기계획 확약하라”


앞으로 양측의 협상에서는 10년 장기투자 확약서가 새로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산은은 최근 GM 측에 ‘10년 이상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는 장기투자 계획을 요구했다. GM이 산은의 자금 지원을 받은 뒤 사업을 철수하는 ‘먹튀’를 방지하려는 조치다. 하지만 이에 대해 GM은 구체적인 견해를 내놓지 않고 있다.

산은이 요구한 차등 감자를 GM이 수용할지도 중요한 쟁점이다. 현재 한국GM 지분 17.02%를 보유한 산은은 GM과 맺은 주주계약서에 따라 한국GM의 청산과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다. 주주계약서에는 거부권 요건을 지분 15%로 정해 놨다.

하지만 GM이 본사 대출금 27억 달러를 출자전환하면 산은의 지분은 17.02%에서 1% 미만으로 떨어진다. 산은은 15% 이상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 GM에 20분의 1 이상의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GM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다만 GM이 ‘지분 15% 룰’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산은의 거부권을 보장하면 차등 감자 요구를 고수하지 않을 방침이다.

실사 결과도 향후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실사를 통해 한국GM 경영 부실의 원인으로 지목된 과도한 이전가격(계열사 간 거래 가격), 연구개발비, 인건비, 관리비, 고금리 대출 문제 등을 꼼꼼하게 따지고 GM에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 한국GM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을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GM의 요구를 두고 정부와 GM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와 공장 증설 등이 이뤄져야 외국인투자지역이 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강유현 yhkang@donga.com·한우신 / 세종=이건혁 기자
#한국gm#노사#법정관리#장기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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