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피플]기 소르망 “한국은 가짜 민주주의 체제…대통령 권한 내려놓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3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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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소르망 전 파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외교는 잘 해나가고 있지만 재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공격만 할 게 아니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기 소르망 전 파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외교는 잘 해나가고 있지만 재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공격만 할 게 아니라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한국 대통령의 힘은 거대합니다. 이는 본인에게도 국가에도 좋지 않습니다. 헌법 개정안에는 그 권한을 내려놓는 내용이 포함돼야 할 겁니다.”

30여 년에 걸쳐 100번 넘게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깊은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전 파리대 교수(74). 1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그는 한국의 개헌안에 대해 “‘5년 단임제냐 4년 중임제냐’보다는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고 사회 정의를 강화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을 “아직 덜 완성된 민주주의, 가짜 민주주의 체제”라고 진단했다. 가짜뉴스나 댓글 여론 조작에 한국 사회가 휘둘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해외에서는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여론이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영향을 미치더라도 제한적이고요. 뉴스나 여론이 조작되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수시로 확인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이것이 부족합니다.”

최근 발생한 일들을 보면 한국의 사법기관은 정치나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의 경우 죄의 유무와는 별개로 재판 받기 전 비집권 정당이나 전 정권의 정치인 구금은 상상할 수 없죠. 또한 공영방송이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눠 온 친구인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2)을 최근 면회했다.
소르망 전 교수는 한국의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태라며 “재벌의 독과점을 해결할 법과 규칙을 마련해야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재벌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건 좋지만, 일자리를 창출할 스타트업이 설 자리가 너무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의 ‘갑질’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재벌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줬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가 없었지요.”

소르망 전 교수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대상국들이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겠지만 국제 정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유일한 희생양은 북한 주민”이라고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미국은 비핵화를, 중국은 한반도 분단 상태 유지를, 남한은 평화를 얻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남북 관계에 대해선 “유럽연합(EU)과 같은 정상적인 관계(Normal Relationship)”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금 세대가 원하는 ‘국경의 안정성’과 ‘평화’를 위해선 경제협력이 이뤄지는 도시들이 점차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 중 가장 좋은 일”이라고 했다.

“미투 운동은 한국의 진짜 민주주의를 위한 시작입니다. 공장 노동자 등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피해 사실을 단순 고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평등을 위한 구조적인 변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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