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조국 위한 순교… 조부의 뜻 늘 되새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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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주기철 목사 손자 주승중 목사와 현충원 만남
“하나님과 조국 위한 순교… 조부의 뜻 늘 되새겨”



국립서울현충원의 주기철 목사 묘소를 19일 찾은 손자 주승중 목사. 주기철 목사의 유해가 있던 평양의 묘지는 재개발돼 흔적을 알 수 없다고 한다. 현충원 묘소에는 주기철 목사가 생전에 쓰던 성경과 부인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국립서울현충원의 주기철 목사 묘소를 19일 찾은 손자 주승중 목사. 주기철 목사의 유해가 있던 평양의 묘지는 재개발돼 흔적을 알 수 없다고 한다. 현충원 묘소에는 주기철 목사가 생전에 쓰던 성경과 부인의 유해가 안장돼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일 서울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의 주기철 목사(1897∼1944) 묘소.

주 목사는 손양원 목사(1902∼1950)와 함께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순교자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꼽힌다. 주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순교했다. 기일(21일)을 앞두고 묘소를 찾은 손자 주승중 목사(60·인천 주안장로교회 위임목사)는 “올 때마다 새로운 희망과 각오를 주신다”며 미소를 지었다.

―주기철 목사의 정신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조국을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이다. 목사님은 1935년 평양신학대 집회에서 그 정신을 강조했다. 10년 형기 중 회유를 위한 가석방으로 5차례 집과 감옥을 오갔다. 팔순 어머니와 아내, 네 아들과 지내면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일제의 수작이었다.”

―인간적 고뇌는 없었을까.

“주기철 목사님은 초인, 강인한 순교자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투옥 전 ‘노모와 처자,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의(義)에 살고 의에 죽게 하소서’ 등 5가지 유언 설교를 한다. 특히 장기간 고문에 변절할까 두려우니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청한다. 고통스럽지만 결단을 내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주승중 목사는 ‘할아버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내내 ‘주기철 목사’ ‘목사님’이었다. 그는 “누구의 손자라는 걸 내세우고 싶지 않고, 누를 끼치기도 싫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주기철 목사의 순교 후에도 가족들의 고난은 이어졌다. 큰아들 영진은 북한 지역에서 목회를 하다 6·25전쟁 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했고, 둘째 영만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소천했다. 셋째 영해와 막내 광조는 장로로 신앙 활동을 이어갔다. 주승중 목사는 영해 장로의 2남 3녀 중 막내다.

―주기철 목사의 순교 후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갔나.

“남쪽으로 내려온 3형제는 어머니까지 소천한 뒤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손양원 목사님이 운영하는 보육원 생활까지 했다. 그런데 아버지(영해 장로)를 통해 저를 포함한 9명의 목사가 나왔다. 고난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축복도 있었다.”

―주기철 목사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아버지께 들은 얘기다. 목사님은 4형제를 각각 루터, 오거스틴, 사무엘, 다윗으로 불렀다. 큰아버지는 목숨 걸고 종교개혁을 한 루터처럼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고, 둘째 숙부는 방탕한 삶을 살다 길을 찾은 오거스틴처럼 나중에 신앙인이 됐다. 아버지는 시대와 시대를 잇는 사무엘처럼 목회자 가족의 다리가 됐고, 막내 숙부는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끈 다윗처럼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을 도왔다. 묘한 섭리다.”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해빙 무드다. 유족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주기철 목사님의 유해가 평양기독공원 묘지에 있었는데 재개발돼 흔적을 알 수 없고, 시무하던 평양 산정현 교회도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하루빨리 방북이 이뤄져 제대로 된 흔적을 찾고 싶다.”

―한국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비판이 많다.

“기독교 초창기를 보면 2000만 인구 중 신자가 20만 명,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에 나서고 사회 교육 의료 여성 등 각 분야에서 민족의 희망이 됐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기득권 세력이 됐다. 신앙의 선조들이 추구한 헌신과 봉사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주기철 목사#손양원 목사#개신교#순교자#주승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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