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참여연대는 왜 말이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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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노무현 정부의 주요 브레인은 삼성이었다. 노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400쪽짜리 보고서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를 받았다. 참여정부의 성장전략인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부터 동북아 중심 국가론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주요 국정과제가 삼성의 어젠다였다. 노 대통령의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씨는 “386들이 정의감은 있지만 아는 게 없어서”라고 했다.

진보 정권이 하필 재벌의 머리를 빌리는 현실이 딱했던 걸까.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엔 참여연대가 90개 정책과제를 담은 보고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최저임금법 개정,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같은 굵직한 의제들이 한 달여 후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반영됐다.

여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참여연대는 정부 요직마저 접수했다. ‘노무현 정부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인지 노 정부 당시 시민단체의 국정 참여를 놓고 ‘홍위병 논쟁’ 재연을 염려하던 조심성이 사라졌다. 청와대의 정책실장, 민정수석, 사회혁신비서관,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이 참여연대 출신이다. 정부엔 공정거래위원장, 여성가족부 장관, 국민권익위원장이 있다. 취임 보름 만에 그만둔 금융감독원장과 취임도 못 하고 낙마했던 법무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참여연대 인사다. 정책도 사람도 참여연대의 것이니 ‘민주당 정부가 아니라 참여연대 정부’라는 말이 나온다.

참여연대의 ‘집권’으로 정부는 유능한 쓴소리꾼을 잃었다. 보수 정권의 댓글 조작 사건 때는 수사를 방해했다며 경찰 15명을 고발했던 참여연대는 여당 당원의 댓글 조작 사건인 드루킹 게이트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인사 검증에 줄줄이 실패한 조국 민정수석에 대해 정의당마저 책임론을 제기하지만 참여연대는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외유성 출장 의혹이 불거지자 “매우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냈는데 공식 성명이 아니라 ‘회원께 드리는 글’이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사회 각 분야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성을 가져야 사회가 발전한다. 군인과 재벌이 권력을 가지면 안 되듯 시민단체도 권력 감시라는 고유의 기능을 잃고 권력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대표 브랜드인 참여연대의 신뢰도 추락도 사회 전체의 손실이다. 2013년부터 사회 각 분야의 신뢰도를 조사해온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시민단체를 “믿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2013년 49.5%에서 2017년엔 53.7%로 증가했다. 시민단체가 “청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52.8%에서 57.5%로 많아졌다. 누리꾼들은 요즘 “SKY보다 좋은 대학이 참여연대” “스펙 쌓으러 참여연대 가즈아”라며 비아냥댄다.

참여연대는 출세욕에 몸이 달아오른 이들이 기웃거릴 정도로 시시한 곳이 아니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1999년), 부패방지법 제정(2001년), 증권집단소송법 제정(2003년) 등 1994년 창립된 참여연대가 쌓아올린 성과는 일일이 열거하기 숨찰 정도다. 3선을 노리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2003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시절 이런 말을 했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연대하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에겐 영향력을 끼칠 수 없고 시민운동의 공신력도 크게 떨어진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권은 유한하지만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수 없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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