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복싱같은 격렬한 인터뷰… 佛 언론-대통령 모두 윈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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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에펠탑이 보이는 샤요 극장이 복싱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한없이 자유로운 토론 문화로 유명한 프랑스도 깜짝 놀란 듯했다. 15일 일요일 오후 9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생중계로 TV 인터뷰가 진행됐다.

한국에서처럼 많은 기자들의 질문을 하나씩 받는 기자회견이나 국민 몇 명을 불러서 질문을 받는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언론인 두 명과 대담하는 방식이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에드위 플레넬은 탐사 전문 온라인 언론 메디아파르트의 공동창업자이자 에디터. 그는 반(反)자본주의를 외치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다른 한 명은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언론인 장자크 부르댕. 거물급 정치인과 대담할 때마다 거침없는 독설과 비판을 쏟아낸다.

노동 유연화를 강화하는 노동 개혁, 복지 혜택을 줄이는 공무원 개혁과 철도노조 개혁을 추진하며 대규모 파업이란 저항에 직면한 마크롱 대통령에게 만만치 않은 인터뷰가 될 것이 명약관화했다. 두 언론인은 장소부터 대통령궁(엘리제궁)이 아닌 샤요 극장을 택했다. 대통령이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는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토론이 시작되자 입이 딱 벌어졌다. 사회자도 없이 대통령을 향한 공세가 이어졌다. 질문할 때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쓰지도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이름을 불렀다.

“당신의 개혁에 시위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당신이 추진한 정치운동을 ‘앙마르슈(전진·en marche)’가 아니라 ‘앙포르스(대규모·en force)’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교육 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을 대학으로 보냈습니다. 이게 당신이 68혁명 50주년을 축하하는 방식입니까?”

대통령의 답변이 길어지자 “당신은 선생이 아니고, 우리는 학생이 아닙니다”라며 가차 없이 말을 잘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토론이 아니라 재판장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담은 서로 치고받는 권투 경기처럼 흘러갔다. 한 대통령 측근은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힘든 대담을 택했을까.

시리아전 참전부터 세금 교육 복지 이민 개혁에 이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까지 나올 만한 주제는 다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만만했다. 모든 주제,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손끝에는 원고 한 장 없었다.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 진영의 공격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반응은 ‘프랑스답게’ 제각각이었다. 극좌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나는 인터뷰에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질문을 기다렸다”며 질문자들을 극찬했다. 내각과 여당에서는 “한 번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은 건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 “대체 인터뷰하러 온 거냐, 싸우러 나온 거냐”며 불쾌함을 표시했다.

인터뷰어 부르댕의 소감은 이랬다. “나는 대통령에게 서비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묻고 싶은 질문을 (대신) 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의도대로 인터뷰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국정철학과 내공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살벌하게 치고받았던 경기의 결과는 패자 없는 ‘윈윈’이었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마크롱#프랑스 노동 개혁#프랑스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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