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관 결정에 승복 대신 집단공격… 반성 모르는 집권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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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낙마 후폭풍]與의원들 “선관위 사과하라” 논란

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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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위법행위라는 유권해석을 한 것은 여론몰이식 정치적 해석을 한 것으로 유감을 표명하며…선관위는 직무를 유기하고 무능한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마땅하다. 선거법 개정은 물론 헌법재판소 심판 청구까지 검토하겠다.”

17일 오후 2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등 ‘더좋은미래’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한꺼번에 카메라 앞에 섰다. 이들은 준비한 A4용지 2장 분량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해석에 대한 입장’을 읽어 내려갔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각종 의혹에 대한 선관위의 결정을 대놓고 반박한 것으로, 집권여당 의원들이 선관위 결정에 대해 헌재 심판까지 거론하며 조직적으로 반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래서 인사검증 부실을 반성하기보다 헌법적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압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여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 與, ‘김기식 사퇴’ 선관위에 화풀이

정치권에서는 김 전 원장 논란을 계기로 여권이 인사검증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선관위 결정 하루 만인 17일 잇따라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전 원장에 대한 문젯거리로 삼은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자. 이 문제를 덮는다면 야당이 정략적으로 이번 사안을 활용했다는 비난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참에 여야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실태를 모두 까보자며 아직도 물타기 공세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홍익표 의원은 이 회의에서 “선관위의 결정은 매우 유감스럽다. 정치권과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본 매우 무책임한 해석”이라고 말한 뒤 “차제에 선거법 전체를 손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선거법이라는 레버리지를 통해 선관위를 옥죄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홍 의원은 김 전 원장이 한때 소속됐던 ‘더좋은미래’ 연구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전 원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총선 공천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유권자 조직도 아닌 의원모임에 정책 연구기금을 출연한 것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 판단을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썼다. 그는 특히 선관위가 2년 전 유권해석에서 ‘위법 소지’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법 해석상 문제가 있는 경우 선관위는 통상 소명자료 요구 등의 조치를 하지만 지난 2년간 선관위는 어떤 문제 제기도 없었다. 이 사안은 정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했다.

○ 불리하면 적폐, 유리하면 위대한 결정이라는 與

전문가들은 여당이 선거법 결정에 불복하거나 선관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를 길들이려는 행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 해석을 뒤집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겠다는 건 3권 분립에 위배되고 집권당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선관위 결정을 무시하는 건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헌법 기관에 대해 불리하면 공격하고, 유리하면 환영하는 모순된 행동을 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사법부 판결에 대해서도 ‘내로남불식’ 행태를 보인 적이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출소하자,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을 땐 “위대한 국민 승리의 날”이라고 평가했다.

당 내부에서도 “청와대가 유권해석을 의뢰해 헌법기관이 내놓은 결정을 여권이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선관위가 여당이 좋은 말만 하길 기대해선 안 된다. 야당이 제기한 문제가 아닌, 청와대가 직접 선관위에 질의해서 나온 답변이라면 받아들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사법부 권위와 법치주의 근간을 무시한 신(新)적폐”라고 반박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유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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