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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만행 사건부터 소떼 방북·정상회담까지…판문점 65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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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만행 사건부터 소떼 방북·정상회담까지…판문점 65년사

뉴스1입력 2018-04-17 14:42수정 2018-04-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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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당국간 회담 360회·정상회담 준비 회담 17회
통일부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 과정 조명”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유엔군 제3초소 인근에서 발생한 도끼만행사건. (2018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 News1

북핵 위기 상황이던 1994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은 판문점을 경유해 방북했다. (2018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 News1

지난 1998년 6월 정주영 전 현대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2018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 News1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으로, 남북간 무력 충돌도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가장 아찔했던 남북간 충돌로 기록된 사건 중 하나는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유엔군 제3초소 인근에서 발생한 도끼만행사건이다.

당시 미군과 우리군은 북측 초소를 가린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는데 작업 중단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북한군이 도끼를 휘둘러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뻔했지만 김일성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다만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됐고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1984년 11월23일에도 총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소련 학생이던 바실리 야코블레비치 마투조크가 판문점 북측 지역을 관광하다가 갑자기 우리측으로 귀순하자 북한군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1명과 북한군 3명이 사망하고 미군 1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외에도 판문점에는 종종 총성이 울렸다. 지난해 12월에도 북한군 병사 한명이 우리측 자유의집 방향으로 귀순하자 북측에서 총격을 가했다. 다행히 총격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판문점은 긴장과 대결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화와 협력도 상징한다.


지난 1989년 8월15일에는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대학생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걸어서 귀환해 주목을 받았다. 이는 분단 이래 민간인이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한 사례로 기록됐다.

1998년 6월에는 정주영 전 현대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의 방북은 이후 남북 경제협력과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주춧돌이 됐다.

미국 정부 인사들도 같은 의미로 판문점 길을 넘었다. 1차 북핵위기 상황이던 1994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은 판문점을 경유해 방북했다. 그는 김일성을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했고 후에 제네바 합의로 이어졌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분단의 상징이 된 판문점은 또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한 회담 개최 장소로도 주로 이용됐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1991년까지 판문점에서 총 459회 군사정전위원회가 개최됐다.

이외에도 지난 1971년 8월20일 ‘남북 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당국간 회담이 총 360회,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남북회담이 총 17회 열렸다.

한편 통일부는 17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남북회담 약사 및 판문점 현황’(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자료를 배포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되기까지 조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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