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안전]시속 60㎞ 차에 치이면 사망 확률 80%…속도 10㎞ 줄였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6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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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는 서울 도심을 동서로 잇는 핵심 간선도로다. 2016년 서울시 조사 결과 하루 평균 차량 7만3397대가 종로(종로3가 기준)를 지났다. 한양도성 안 24개 교통량 측정지점 중 4번째로 많다. 8일 이곳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개통됐다. 동시에 종로의 차량 최고속도는 시속 60㎞에서 50㎞로 낮아졌다. 차량 속도를 줄여 자전거뿐 아니라 보행자 안전도 지키기 위해서다.

● 생명 살리는 ‘10㎞ 효과’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충돌시험장에서 시속 60㎞로 달리던 승용차에 부딪힌 어른 크기의 더미(실험용 인형)가
 차량 위로 공중제비 하듯 튕겨지고 있다. 더미의 머리와 다리 부위는 크게 파손됐다. 진짜 사람이었다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제공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충돌시험장에서 시속 60㎞로 달리던 승용차에 부딪힌 어른 크기의 더미(실험용 인형)가 차량 위로 공중제비 하듯 튕겨지고 있다. 더미의 머리와 다리 부위는 크게 파손됐다. 진짜 사람이었다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제공

지난달 말 경기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엔진 소리가 커졌다. 속도계가 시속 60㎞를 가리킨 직후 ‘쿵’하는 소리가 났다. 키 170㎝정도의 성인이 공중제비 하듯 360도 회전 후 땅에 고꾸라졌다.



승용차와 부딪힌 건 ‘더미(실물과 똑같이 만들어진 실험용 인형)’였다. 제작비가 1억 원이 되는 더미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완전히 부서졌다. 차량 상태도 온전치 않았다. 더미의 허리 부분과 충돌하면서 보닛(후드)이 심하게 찌그러졌다. 더미의 머리 부위와 충돌한 앞 유리가 깨지면서 파편이 차량 내부에 쏟아졌다.





현재 전국 도심의 일반도로 제한속도가 시속 60㎞다. 상당수 운전자가 ‘별로 빠르지 않다’라고 여기는 속도이다. 하지만 이 속도에서 보행자 충돌사고가 발생하면 이처럼 치명적인 결과가 나온다.

속도를 10㎞ 줄였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차량과 마네킹 모두 온전한 상태로 고쳤다. 나머지 조건은 모두 같았다.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과 마네킹이 부딪혔다. 이번에도 차량 보닛은 찌그러지고 앞 유리가 깨졌다. 더미의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도 분리됐다. 하지만 ‘공중제비’는 없었다. 마네킹은 차량의 보닛과 충돌 후 그대로 밀려나갔다. 유리 파편도 튀지 않았다.








이날 실험 결과 시속 60㎞에서 보행자의 머리부분 상해지수는 4078을 기록했다. 머리 상해지수가 4000이 넘으면 사망 확률 80% 이상이다. 반면 50㎞에서는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인 2697이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머리가 받는 충격이 커졌다. 이재완 한국교통안전공단 안전연구처장은 “10㎞의 속도 차이가 큰 것 같지 않지만 충돌에너지는 제곱으로 증가한다. 보행자가 차량이 부딪힐 때 받는 충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고 말했다.

● 이유 있는 ‘스쿨존 30㎞’


차량이 천천히 달릴수록 운전자는 전방의 보행자를 일찍 발견할 수 있다. 제동시간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의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정한 이유다.

앞선 실험과 같은 조건에서 시속 30㎞ 충돌 실험을 실시했다. 허리 부분을 충돌한 더미는 그대로 보닛 위에 올라탔다. 60㎞, 50㎞ 때처럼 공중에 떠오르거나 전방으로 밀려나가지 않았다. 앞 유리를 들이 받지도 않았다. 머리 상해지수는는 812에 그쳤다. 중상 가능성은 15.4%에 그쳤다. 시속 50㎞의 72.7%, 60㎞의 92.6%보다 최대 6분의 1가량 낮았다.

만약 같은 속도로 달리는 차량과 충돌할 경우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어린이 통행이 많은 스쿨존에서 반드시 시속 30㎞ 이하로 운전해야하는 이유다. 스쿨존뿐 아니라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주택가 이면도로와 같은 ‘생활도로’도 마찬가지다. 이 처장은 “자동차 안전도 평가항목에 충돌 시 보행자 안전 확보를 포함하면서 각 완성차 업체들이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속하지 않고 보행자를 우선시 하는 운전습관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도심 속도를 시속 50㎞로, 생활도로 속도를 시속 30㎞로 줄여 자연스럽게 차량의 저속운행을 유도하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화성=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제한속도 10km 낮추면 교통사고 24% 감소▼

2016년 한 해 동안 과속에 따른 교통사고로만 19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3년에는 똑같은 이유로 144명이 숨졌다. 3년 사이 34%나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16%나 줄었다.

대부분 고속도로나 도심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과속 사망사고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과속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96%가 일반도로에서 숨졌다. 일반도로 대부분은 제한속도가 시속 60㎞로 지정돼 있다. 서울 등 일부 지역의 경우 보행자가 이용하는 도로 중에 제한속도가 시속 70, 80㎞인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양재대로다. 횡단보도 6개가 설치돼 항상 보행자가 건너는 곳이지만 제한속도가 시속 70㎞다.

16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16개 국가의 일반도로 제한속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최대 시속 80㎞로 가장 높았다. 반면 해외는 대부분 시속 50㎞로 정해놓고 있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 정도만 보행자 통행이 적은 일부 도로에 한해서 시속 60㎞ 안팎을 규정하고 있다. 이중 덴마크의 경우 제한속도를 시속 60㎞에서 50㎞에서 줄이자 사망사고가 24% 감소했다. 호주도 일반도로 속도를 50㎞로 낮추자 사망은 12%, 중상은 최대 40%까지 줄어들었다.

이들 국가가 제한속도 ‘다이어트’에 나선 건 속도를 높여도 실제 차량 통행시간 단축에 별 효과가 없어서다. 길게는 수백m, 짧게는 100m 간격으로 설치된 신호등과 횡단보도 그리고 많은 통행량 탓에 도심 일반도로에서는 제한속도만큼 달리기 어렵다.

한국교통연구원 한상진 박사 연구팀이 2013~2016년 울산의 일반도로를 대상으로 측정한 결과 도심 차량속도는 교차로 등 신호체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제한속도는 큰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시속 50㎞ 도로에서 1㎞를 통행한 시간이 60㎞ 도로보다 더 짧은 것으로 분석됐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차량과 보행자 통행이 많은 도시지역은 그 외 지역과 비교해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차량속도를 관리해 사고를 줄이는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속도관리 자체만으로 사고 발생과 피해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 공동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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