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영]EU의 디지털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유럽연합(EU)이 거대 인터넷 공룡들을 겨냥해 ‘디지털세(稅)’를 신설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유럽에서 올린 매출의 3%를 세금으로 회수할 방침이다. 글로벌 매출이 연간 7억5000만 유로(약 9900억 원)를 넘고, 유럽에서 5000만 유로 이상을 벌어들이는 150개 기업이 대상이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미국 IT 기업이어서 트럼프발(發) ‘글로벌 무역전쟁’에 대한 EU의 대항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1784년 영국은 남자들의 모자에 부과하는 ‘모자세’를 도입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모자가 품위와 예의를 표현하려는 신사들의 필수품이었다. 부자일수록 모자를 많이 가지고 있는 점에 착안한 일종의 ‘부유세’였다. 그러나 모자 제조상들이 기존 모자와 다른 형태의 ‘쓸 것’을 만들어 파는 등 세금 저항이 심해 11년 만에 폐지됐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상통화 과세, 로봇 노동에 부과하는 소득세인 ‘로봇세’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디지털세 도입도 달라진 경제 환경에 따른 것이다. 기존 법인세 체계는 국경을 넘나들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인터넷 공룡들에게는 코웃음거리다. 이들은 유럽에서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에 본부를 두고 실제 돈을 벌어들인 나라에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이런 ‘꼼수 영업’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구글은 지난해 한국에서 스마트폰 앱 판매를 통해 1조4600억 원 정도를 벌었다. 하지만 한국 매출의 상당수를 아시아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로 돌려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 10년 새 글로벌 시장 지형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10년 전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상위 20개 기업 중 1개에 불과하던 인터넷 기업은 이제 9개로 늘었다. EU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들에 대한 고강도 과세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인터넷 공룡들은 왜 전 세계에서 ‘동네북’이 됐는지 돌아봐야 한다. 덩치가 커진 만큼 그에 걸맞은 기업의 경제·사회적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홍수영 논설위원 gaea@donga.com
#eu#디지털세#글로벌 무역전쟁#세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