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일자리, 쉬운 선택으로는 못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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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지난해 12월 서울 코엑스에서 기획재정부 주최로 열린 공공기관 채용정보박람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전력, IBK기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120여 개의 공공기관이 참가한 행사였다. 개막식 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 공기업 부스에서 상담 중이던 취준생에게 말을 걸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김동연 부총리님이세요”라고 소개하자 취준생은 관심 없다는 듯 멀뚱히 김 부총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곧이어 “이분은 문창용 캠코 사장님이세요”라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 청년은 자신이 취업하는 데 누가 도움 되는 사람인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거였다. 캠코가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이든, 김 부총리가 더 높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15일 발표된 청년일자리종합대책을 보고도 청년들은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정부가 세금으로 연봉을 1000만 원 높여준다고? 아∼ 3년 동안만…. 그러면 그 이후에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는 건 연봉뿐만 아니라 복지 혜택, 근무환경, 안정적인 미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면 결혼하기가 어렵다”는 청년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만들면서도 또다시 쉬운 길을 택했다. 예산을 지원해줄 테니 신청해서 받아가라는 것이다. 이번에 예산을 늘린 사업들은 신청자들이 적어 지난해 배정된 예산도 다 못 썼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지만 절박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번 대책에는 어려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자리를 늘리려면 꼭 필요한 3가지 방안이 담겨 있어야 했다.

첫째,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관광, 의료와 같은 서비스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청사진을 제시해야 했다. 서비스업은 매출 10억 원당 17.3명이 일자리를 얻는다. 제조업 8.8명의 두 배다. 지역에 특화된 관광상품만 만들어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관광수지 적자도 줄일 수 있다.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은 “지난해 추경안에 담긴 11조 원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그 돈으로 대형 스마트팜 100개, 외국인 전용 병원 10개를 만들었다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생겼겠느냐”고 아쉬워했다.

2011년 국회에 제출돼 아직도 발목이 잡혀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둘째, 이번 청년일자리대책에는 신산업을 키우기 위한 규제혁신 방안도 담겨 있어야 했다. 규제를 틀어쥐고 있는 공무원과 기득권을 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나라는 인공지능(AI), 의료, 빅데이터 등 세계 100대 혁신사업 중 57개 사업이 불가능하고 이 중에서 13개는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기업규제가 심하다”고 최근 지적했다.

셋째,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해 쌓은 기술과 경험을 통해 대기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노조를 설득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10년간 21번의 청년일자리대책을 내놨지만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쉬운 길로 가서는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기업, 정규직, 노조, 취업준비생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모아 대토론회라도 열어 사회대통합 해법을 찾기를 설득해야 한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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