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푸틴에 최후통첩… 英-러 충돌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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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독극물 암살 시도, 합당한 설명 없으면 전방위 보복”

“13일 밤 12시까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영국은 전방위적인 보복 조치를 단행하겠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 러시아에 최후통첩을 했다. 양국 사이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의회에 출석해 4일 영국 남부 소도시 솔즈베리에서 ‘이중 스파이’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 전 러시아군 대령(66)과 그의 딸이 괴한으로부터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은 사건에 대해 “러시아 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메이 총리는 군사연구시설 포턴다운의 분석 결과를 인용해 “이번 사건에 쓰인 신경작용제는 ‘노비초크(Novichok)’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어로 ‘새로운 인물’을 뜻하는 노비초크는 1970, 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됐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가 직접 암살을 시도했든, 러시아군이 통제력을 잃어 신경가스가 암살자의 손에 들어갔든 러시아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압박했다. 메이 총리는 “우리 땅에서 무고한 시민을 죽이려는 대담한 시도를 용인할 수 없다”며 “러시아 측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면 영국은 이를 러시아의 불법 무력행사로 간주하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으로 이중간첩 혐의로 잡혔다 풀려난 뒤 영국에서 거주 중이던 스크리팔은 4일 자신이 거주하던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인근 벤치에서 딸 율리야와 함께 쓰러진 채 발견됐다. 영국 경찰은 7일 이들이 신경물질 공격을 당했다고 발표한 뒤 250명 이상의 대테러 전문가를 투입해 조사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스크리팔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보복을 노리고 있었다. 옛 소련 공수부대 출신인 그는 1980년대부터 러시아 정찰총국(GRU) 정보요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영국에 포섭돼 동료 요원들의 신원을 영국 해외정보국(MI6)에 돈을 받고 넘기는 이중간첩 행위를 했다. 전역(1999년) 후인 2004년 러시아 정보당국에 체포된 그는 2006년 1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10년 7월 미국과 러시아 간에 이뤄진 스파이 맞교환으로 풀려났다. 더타임스는 스파이 맞교환 후 익명의 한 크렘린 당국자가 “배신자의 신원과 위치를 알고 있다. 이미 암살자가 파견됐다”고 말한 바 있다고 6일 전했다.

이제 관심은 영국의 대응이다. 러시아는 영국의 최후통첩에 응답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영국의 발표는 한 편의 서커스 쇼”라고 맹비난한 뒤 자국 주재 영국대사를 초치했다. 구체적인 조사 내용을 보여줄 것도 요구했다. 영국은 러시아 외교관 추방부터 러시아 재벌의 영국 자산 동결, 러시아 관영 언론의 영국 내 방송 송출 금지, 러시아 은행의 자금세탁 관련 단속, 올해 6월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 보이콧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영국이 러시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이에 맞춰 미국이 러시아의 군수품 수출이나 판매를 금지하는 공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건은 분명히 러시아 측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백악관은 영국이 러시아에 행동으로 보복하는 것까지는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신경가스 사용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영국은 아주 중요한 동맹국으로 이 사건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영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은 당분간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는 대선(18일)을 앞두고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선거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메이 총리 역시 자신의 허약한 리더십을 바로 세우는 데 이번 사건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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