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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신계급사회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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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신계급사회의 길목에서

동정민 파리 특파원 입력 2018-02-21 03:00수정 2018-02-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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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흔히들 프랑스 하면 삼색기의 상징, 평등한 사회를 떠올린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프랑스도 알고 보면 ‘계급사회’다.

프랑스 필수 관광코스인 베르사유궁 근처 지역은 지금도 귀족 출신 부자들이 모여 산다. 프랑스 파리의 부자 동네 16구에는 할머니들의 재력으로 사립학교나 국제학교에 다니는 손자 손녀가 적지 않다.

대학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각 분야의 엘리트들은 상위 4% 정도만 간다는 ‘그랑제콜’ 출신이다. 특히 정치 분야는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오지 않고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ENA 졸업생들은 취직하면 일반 대학 출신보다 직급이 몇 단계 높게 시작한다. 출발부터 다른 셈이다. 분야별로 귀족 출신 자제들의 사교클럽도 암암리에 활성화되어 있어 이들이 사회의 지도층을 주로 형성한다.

왕의 목을 친 나라가 이런 계급을 인정할까 싶지만 실제 프랑스 소시민들을 만나보면 그들과 나는 원래 다른 인생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신분 상승의 욕구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내 자식은 나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은 힘든 현실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러나 그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한국도 경제력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신(新)계급사회’라는 인식이 점점 강해진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난 자식들이 입시제도에 맞춘 사교육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이 높다. 같은 좋은 대학을 나와도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사회생활에서 출세의 속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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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계급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에는 아이로니컬하게도 ‘평등사회’가 있다.

프랑스는 개천에서 용이 날 기회는 적지만 개천에서 잘살 수 있게 해 준다. 흔히 ‘거지도 와인을 마신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 태어나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죽기 전까지 먹고살 만한 최소한의 복지가 마련돼 있다.

게다가 계급사회를 인정하는 저변에는 ‘저들은 버는 만큼 세금을 낸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에 1유로도 내지 않는 10등급 가난한 학생 부모는 한 끼당 7유로 이상 내는 1등급 부자들 덕분에 질 좋은 급식을 제공받는다는 존중이 있다.

계급사회의 길목에 들어선 한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 신계급을 깨부수지 못하는 한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면 개천에서도 살 수 있는 복지를 마련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렇게 복지를 늘리자니 프랑스만큼 비옥한 땅도, 조상들이 남겨놓은 찬란한 관광자원도 충분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더 크고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한국은 안정적인 계급사회를 지향할 것인가’이다. 복지를 아무리 늘려도 ‘그럼 나는 앞으로 개천에서만 살란 말이냐’는 분노를 달래기 어렵다. 기자가 만난 프랑스 국민들과 다른 대목이다. 강한 평등의식과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된 역동성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개천에서 용이 되고 싶은 의지를 꺾어선 안 될 것이다.

우리 현실은 점점 더 신계급사회로 들어서고 있는데, 국가도 국민도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극복 대안도 마땅치 않은 현실. 요즘 화두인 ‘행복’을 찾는 답은 그런 복잡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듯싶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계급사회#신분 상승의 욕구#신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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