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기업들이 만든 김치가 맛있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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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1부 기자
서동일 산업1부 기자
기업들이 겨울마다 반복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김장 담그기’ 행사를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맛은 과연 어떨까’ 사랑과 봉사의 마음까지 넣어 양념을 했다지만 김치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업체에 비해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비용도 궁금하다. 앞치마와 고무장갑, 비닐 등 소모품을 매년 새로 살 테니 말이다. 임직원이 쏟는 시간과 노력도 비용으로 환산하면 만만찮을 것이다. 차라리 전문점에 돈을 주고 김치를 사서 전달하면 여러모로 효율적이지 않을까.

기업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며 담근 김치를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봉사의 의미를 되돌아볼 기회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문득 의문이 드는 건 ‘홍보’에만 집중하는 기업이 간혹 보여서다. 이들은 기업 로고가 박힌 앞치마와 현수막이 사진 한 장에 담기는 데 집중하고, 언론에 사진이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김치 받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맛내기’와는 거리가 있다.

기업들은 매년 수백, 수천억 원씩 사회공헌활동에 쓴다. 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없고, 만들어낸 효과도 정량화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다. 김장에 쓴 비용과 얻어낸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지 못하니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부터 줄이고 본다. 넓게는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이 얼마만큼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지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 그럴 방법이 없었다.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에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보자는 시도는 여기서 시작된다. 기업 재무제표 맨 마지막에는 숫자로 이윤이 표시되는데 이를 ‘싱글 보텀 라인(Single bottom line)’이라 부른다. 여기에 사회적 가치를 더해 ‘더블 보텀 라인(Double bottom line)’으로 표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오직 이윤 추구가 기업의 목적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으니 기업 가치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공 기준의 변화’다.

평가 방식이 변하면 기업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큰돈을 벌어다 줬던 사업이라도 사회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었다면 이는 재평가될 것이다. 반대로 사업장에서 무사고를 이어가기 위해 했던 노력,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등 친환경을 위해 투자한 비용도 재평가 받을 수 있다. 투입한 비용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공헌활동도 사라지지 않을까.

기업 선호 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연봉 등으로 갈렸던 기업 선호도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란 새로운 기준에 따라 재배치될 가능성도 크다. 선호도가 높아진 기업에 우수한 인재도 몰릴 테니 기업들은 인재 영입을 위해서라도 앞다퉈 사회적 가치 창출에 나설 것이다.

물론 간단한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고차방정식을 푸는 일보다 어렵다. 그러나 지금의 기업 회계 기준을 만드는 데도 5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세계 500대 기업 순위, 국내 대학 순위 등 수많은 가치 평가들 모두 오랜 시간을 쏟아가며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해야 하는 일은 맞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그룹이 가장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SK그룹 계열사들은 보여주기식 행사를 없애고, 사회적 가치 창출 전담조직을 만들어 평가 지표를 만들고 있다. SK그룹이 제대로 지표를 만드는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 모두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렇게 수년간 칭찬과 격려, 비판의 논리들이 치고받으며 싸워야 김치도 만들 사람만 만들게 된다.

서동일 산업1부 기자 donga@donga.com
#기업 김장 담그기#김장#사회적 가치#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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