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한 상(床) 차려 올리려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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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위원
이기홍 논설위원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12일 검찰에 소환됐다. 박 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튿날 쫓겨난 청산 1순위 인물이었다. 검찰 소환까지 8개월이나 걸렸으니 샅샅이 털었을 듯싶은데 주된 혐의는 의외다. 예비역 장성이 주축이 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회장 때 국가정보원 지원을 받아 정치적으로 편향된 안보교육을 하고, 보훈처장 시절 국정원이 만든 안보교육용 DVD 세트 1000개를 배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박 씨를 옹호할 마음이 없다. 박 씨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했을 때(2013년 5월) 그런 낡은 발상을 퇴출시키라고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기명칼럼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자의 이념적 편향성과 별개로, ‘얼마나 감옥에 보내고 싶었으면 이렇게라도 잡아넣으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은 ‘공영방송 적폐청산’에는 MBC 전 사장에게 국정원법을, 청와대 전 홍보수석에겐 방송법을 사상 처음 적용했다. 감사원 고용노동부 등도 열심히 뛰었다. 최근 최저임금 논란이 벌어지자 노동부는 위반 사업주 명단을 공개하겠다며 또 한번 의욕을 과시했다.

정권이 바뀌면 멋들어지게 한 상(床) 차려서 위에 올리려는 충성경쟁이 벌어진다. 정권의 코드와 핵심 지지층 정서를 읽은 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 경쟁 속에서 중립성과 형평성을 충언하는 공직자는 찾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경우 사장 인선 중립성을 강화한 여야 합의 방송법 개정안이 있으니 새 법에 따라 경영진을 교체하면 방송 장악이라는 ‘진짜 적폐’를 끊을 수 있었을 텐데, ‘돌진 경쟁’만이 벌어졌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냥개는 결국 주인에게 큰 화를 미친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앉힌 게 MB의 최대 실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정부의 김기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뭐든지 시키면 100%가 아니라 수백 % 더 물어오는, 일 잘하는 이로 소문났지만 결국 오버에 오버를 거듭했다.

대선을 1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초원복국에서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접대 등 선거운동을) 검찰에서도 양해할 거야. 경찰청장도 양해”라고 하자 박일룡 부산경찰청장은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라고 한발 더 나갔다. 박 청장은 그 후 경찰청장 안기부 차장으로 승진했지만 학생 시위에 대한 총기 사용 엄포, 불법 감청 사건 등으로 정권에 큰 부담을 줬다. 과유불급이라 했듯이, 오버하는 이들은 언젠간 자신이 속한 그룹에 피해를 주게 마련이다.

오버한 걸로는 추미애 여당 대표의 16일 신년회견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추 대표는 최저임금 논란에 대해 “재벌과 보수 언론은 광복 이후 누려온 막대한 불로소득의 구조가 드러날까 봐, 불평등과 양극화의 나라가 대대손손 보장해주었던 후손들의 미래가 잘못될까 봐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개헌에 대한 야당의 태도를 놓고 전두환 시절을 언급하면서 “30년 전, 호헌세력과 개헌세력 간의 대결이 재연되는 것 같다”고 했다.

1980년대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군부정권에 맞서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벌였던 직선제 개헌 투쟁을 현재의 개헌 상황에 대입하는 발언을 듣고, 추 대표가 80년대를 잘 몰라 오버했나 싶어 검색해 봤다. 추 대표는 1958년생으로 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95년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5공과 연관돼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에게 한 말도 떠올랐다. “군인들이 (1980년)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전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가 살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물정보를 찾아보니 전희경 의원은 1975년생이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박승춘#문재인 정부#적폐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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