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취미’ 탈북민… 드라마 챙겨보다 “이게 현실” 예능 즐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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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硏, 南문화 수용 태도 분석

한국에 온 지 3년이 된 40대 여성 탈북민 A 씨. 그녀는 북한에서 보위부원의 감시를 피해 한국 드라마와 영화 수백 편을 볼 정도로 남한의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한국에 정착해선 오히려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는다. A 씨는 “뻔한 스토리에 자극적인 내용의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김건모를 봐도 무대에서는 가수왕이지만 생활상에 들어가면 너무나도 천진하고 재밌지 않냐”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하면서 어떻게 문화예술을 수용하는지를 밝힌 ‘탈북자의 남한 문화예술 수용태도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현성 연구위원은 “탈북민 33명을 심층 인터뷰해 북한 거주 시기부터 현재까지 문화예술 수용의 변화 양상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 북한에선 ‘문화예술 작품=사실’


북한 주민들의 문화예술 생활은 TV 시청과 영화 단체 관람이 주를 이룬다. 특히 볼만한 프로그램은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1980년부터 7년간 10부작으로 제작된 ‘조선의 별’과 1992년부터 시리즈로 제작된 ‘민족과 운명’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창작물이지만 영화 관람 후 토론을 강제하는 ‘실효 모임’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이게 한다. 1990년대 중반 탈북한 50대 남성 B 씨는 “북한에선 속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급속히 유입되면서 이들의 인식 역시 바뀌었다. 한국의 발전된 모습이 비치는 드라마 속 배경이 북한 주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2000년대 후반 한국에 온 20대 남성 C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차가 막힌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북한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집마다 소파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 한국 정착할수록 리얼리티 프로그램 선호


한국으로 온 탈북민들은 정착 초기 음모나 배신이 줄거리인 드라마 대신에 가족극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선호한다. 2000년대 후반 한국으로 온 40대 중반 여성 D 씨는 “죄를 뒤집어씌워 감옥에 가게 하는 드라마를 보면 내 심장이 멎는 것 같다. 힘겨웠던 북한과 중국 생활 기간이 생각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착 기간이 길어질수록 드라마 대신에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뉴스 등을 즐겨 보는 경우가 많다. 50대 중반 탈북민인 E 씨는 “드라마는 과장적으로 짜내서 재미가 없다. KBS의 인간극장, MBC 스페셜 같은 실생활을 보여주는 게 재밌다”고 밝혔다.

한국에 와서도 고향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 탈북자 출연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후반 한국에 들어온 40대 중반의 여성은 “아들과 함께 보면서 힘들었던 탈북 과정을 함께 이해하고, 서로 위로한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탈북민들은 문화예술 작품을 실제와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거대 서사극보단 주말드라마처럼 익숙한 소재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선호한다”며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리얼리티가 강한 예능이나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한편 탈북민 중에서 영화관이나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을 방문해 관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경제활동에 매달리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다. 조 연구위원은 “탈북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서는 문화 적응(42.2%)이 경제적 어려움(61.3%) 다음으로 높았다”며 “탈북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탈북민#탈북민 한국 문화예술 수용 태도#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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