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이한일]초보 농사꾼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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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춘기 시절부터 항상 고민했고 궁금했던 화두 중 하나다. 30세, 40세를 넘기면서 나름 몇 가지 정의를 내렸지만 지금까지도 내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결론은, 나이는 결국 꿈과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꿈을 하나씩 버리는 것이 아닌지.

3년 전 여름, 이곳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귀촌한 것도 얼마 남지 않은 내 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두 해째 짓고 있는 농사는 주판알 굴릴 것도 없이 물론 적자다. 오미자는 아직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고, 인수받았던 매실나무도 그간 워낙 관리하지 않아 별로다. 퇴비를 2, 3번 제대로 주고 가지치기를 했더니 지난해에는 제법 많이 열렸다. 하지만 황매실을 기다리다 따는 시기를 놓쳐 다 떨어졌다.

첫해에 심었던 작물 중 더덕과 곤드레, 취나물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더덕은 파종까지는 잘돼 싹이 모두 잘 올라왔다. 어린 새싹 중 한 구멍에 2, 3개만 남기고 솎아야 하는데 그걸 알 턱이 없는 초보 농사꾼이라 그냥 물만 열심히 줬다. 덩굴이 올라오며 크는 모습을 마냥 신기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어이쿠야’라고 말해서 알았다. 싹을 솎아 주지 않으면 뿌리가 서로 엉켜 제대로 자라지 못해 크지를 못한다.

곤드레와 취나물도 초보 농군을 격려하듯 정말 잘 자랐다. 그런데 6, 7월 뜨거운 햇볕 아래 장작불을 피워 그것을 삶고 말리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서울에서 놀러온 친구 부부와 함께 땀을 흘리며 장작불에 열심히 삶았지만 잘못 말리는 바람에 물렀다. 버리기도 하고 일부는 곰팡이도 펴 못쓰게 됐다.

작년엔 장마가 큰 상처를 주고 갔다. 장마는 큰마음을 먹고 도전한 작약밭을 작살냈고, 탄저병은 고추밭을 휩쓸었다. 집 앞 3000평 고추밭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고구마는 지난해에도 잘돼 20여 상자를 수확했다. 옥수수, 감자를 지인들과 나누고 우리 집을 찾은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초보 농군이었다. 재작년에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 보관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저장고에 보관했더니 채 겨울을 못 넘기고 완전히 썩었다. 그래서 작년엔 삶아서 말려 보관하거나 물로 씻어 황토방에 보관했다. 바로 삶아 말린다는 게 한 달을 넘겼다. 결국 대부분 또 썩었다. 고구마를 보관할 때는 물에 씻는 게 아니라 흙만 털어 보관해야 한다. 깨끗이 보관한다고 열심히 씻은 게 상처가 많아져 오히려 썩었다. 그래도 2상자 정도 건진 고구마말랭이는 지금도 우리 부부와 반려견 ‘아름이’의 최고 간식이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 아내에게 5년은 실패하고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고 5년 이후부터는 적자가 없을 거라 말했다. 이것저것 열심히 심고, 홍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도 받고 있다. 황금 개띠 해 첫 달은 올해 농사계획을 세울 것이다. 아내에게 말했던 ‘5년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
 
이한일
  
※필자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초보 농사꾼#초보 농군#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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