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하나님께 우래옥 분점 차리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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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지기 친구 김동길 명예교수의 '아름다운 작별' … 김동길 명예교수, 英 테니슨 詩 읊어
1948년 연대 기독학생회서 만나… 둘다 평안도 출신으로 우정 나눠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왼쪽)와 고 심치선 명예교수는 1948년부터 우정을 맺어 왔다. 심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김 교수는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그를 잃은 쓸쓸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아일보DB·이양자 연세대 명예교수 제공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왼쪽)와 고 심치선 명예교수는 1948년부터 우정을 맺어 왔다. 심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김 교수는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그를 잃은 쓸쓸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아일보DB·이양자 연세대 명예교수 제공
‘황혼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내 배에 돛을 달고 길 떠날 적엔/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70년간 우정을 나눈 친구의 마지막 배웅길에는 한 편의 시(詩)가 남아 있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난해 12월 31일 별세한 심치선 연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의 추모예배에서 아흔 살의 노교수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지팡이를 짚으며 고인의 영정 앞으로 다가온 이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영국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속세를 떠나(Crossing the Bar)’를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읊어 내려갔다.

김 교수가 70년지기 친구인 심 교수를 보내는 아름다운 이별편지가 뒤늦게 화제를 낳고 있다. 김 교수는 장례식 후 별도로 발표한 편지 추모글에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당시 이화여고 신봉조 교장선생께서 이전 해까진 우등생들을 몽땅 이화여대에 보냈는데, 남녀공학을 시작한 연세대에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치선이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기독학생회의 멤버가 되어 함께 활동하게 됐는데 그것이 1948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의 일이 아닙니까.”

한 해 먼저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한 김 교수는 심 교수와 함께 기독학생회 활동을 한 이후로 우정을 지켜왔다. 졸업 이후 김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심 교수는 이화여고에서 역사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이들이 재회한 것은 1955년 심 교수가 연세대 교수로 함께 부임하면서. 심 교수는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여학생처장을 맡으면서 ‘인성교육의 대모’로 불렸다. 심 교수는 재산 대부분을 이화여고와 연세대에 기부했으며, 시신까지 연세대 의대에 기증했다.

김 교수는 “나는 생명의 영원함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믿지만 이 생에서의 이별은 슬프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들의 친구이던 신영일, 이선애, 이근섭이 다 떠나고 하나 남았던 심치선도 새해를 기다리지 않고, 나이 90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으니, 올해 아흔 하고도 하나가 된 이 김 노인은 외롭기 한이 없다”며 애타는 마음을 표현해 심금을 울렸다.

김 교수는 편지글 마지막에 친구를 잃고 외로운 자신의 심경을 현제명의 ‘고향생각’을 읊조리며 표현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밝은 달만 바라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이 일 저 일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두 사람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생전에 서울 시내의 평양 음식 전문점을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 세상살이의 기쁨과 슬픔을 위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환송예배에서 추도사를 한 이계준 전 연세대 교목(명예교수)은 “우리가 냉면을 즐기던 우래옥이 거기 없으면 연락 주세요. 하느님께 분점을 차리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기도로 추모객들을 위로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심치선 연세대 명예교수#김동길 명예교수#연세대 기독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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