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어강의 한국말로 하는 ‘외국인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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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 외국인교수 45%가 한국계
128명 중 113명이 유학때 국적 바꿔… 순수 해외교포는 15명밖에 안돼
실력있는 외국교수 지원 적은 탓… ‘글로벌 강의’ 기대 학생들만 피해

“영어 강의인데 거의 다 한국말이었어요.”

서울 국립 A대 공대생 박모 씨(22)는 지난 학기 수강한 B 교수 수업을 ‘한강(한국어 강의)’이라고 했다. B 교수는 ‘엄(um)’ 같은 말을 남용하며 계속 더듬댔다. 칠판에 영어 스펠링을 잘못 쓰기도 했다. 한 달쯤 되자 B 교수는 “한국말로 하자”며 영어를 쓰지 않았다. B 교수는 외국인 교수였지만 ‘한국계’였다. B 교수는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뒤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국내 국공립대는 외국인 교수 채용을 늘리고 있다. 세계 주요 대학평가기관의 평가 지표인 글로벌 경쟁력의 상징이면서 학생에게 질 높은 영어 강의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무늬만 외국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 외국인 교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45%가 한국계

17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41개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281명 중 128명(45.5%)은 한국계다. 이들 128명 가운데 88%인 113명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 유학을 하며 미국 캐나다 등으로 국적을 바꿨다. 국적 변경자 가운데 68명은 한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마쳤다. 군 복무를 마친 ‘외국인 교수’도 30명이나 된다.


서울대는 외국인 교수 112명 중 52명(46.4%)이 한국계다. 이 중 47명은 한국에서 태어난 뒤 외국인이 됐다. 서울시립대는 5명 중 4명(80%), 강원대는 8명 중 5명(62.5%), 충남대는 15명 중 9명(60%)이 한국계다.

외국인 교수의 절반가량이 한국계인 이유는 간단하다. ‘순수’ 외국인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국공립대는 해외 유명 학술지에 활발하게 논문을 게재하고 저서를 펴내는 등 연구 성과가 뛰어난 교수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지원자는 적다는 얘기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계에서 이 정도면 A급 학자인데 이들은 자기 나라나 미국 대학에서도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교수와의 융화라는 측면도 고려된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교수는 돌아가면서 맡는 행정직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조건이라면 결국 우리 문화에 익숙한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외국인 교수 자리는 ‘블루오션’

외국인 교수 자리는 교수 지원자 사이에서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지난 2년간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는 174명에서 281명으로 107명(61.4%)이 늘었다. 대부분 은퇴 같은 결원에 따른 채용이 이뤄져 사실상 포화상태라는 한국인 교수 채용과는 다르다. 국내 C대학 학과장은 “교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니 대학 측에서 아예 ‘(한국인 대신) 외국인 쿼터를 늘리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 교수 자리를 노리고 외국 시민권을 따는 한국 유학생은 현재까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국내 사립대에 임용된 한 교수는 “일반 교수는 기약 없이 결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태반이지만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외국인 교수 자리는 임용되기 쉽다는 인식이 해외 유학파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피해는 학생들 몫이다. ‘진짜’ 외국인 교수에게서 새로운 시각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일부 한국계 외국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영어발음 엉망” “영어 듣기가 서툴다면 교수님 수업 피하시길” 등의 평가가 나온다. 김병욱 의원은 “국적을 바꿔 외국인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연구보다 ‘꼼수’에 더 관심을 갖지 않겠나”라며 “상당수는 국적을 바꿔 병역을 기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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