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밀실의 플리바기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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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최순실 씨 측근으로 정유라 씨 승마 지원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가 특검 수사에 유리한 진술을 한 대신 처벌을 피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우리 법은 피고인에게 혐의가 있으면 검찰이 무조건 기소하도록 하고 있다. 혐의가 있는데도 검찰 멋대로 기소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에 해당한다.

▷전직 국가정보원장들이 특수활동비 유용으로 구속됐음에도 예산을 책임진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구속을 면했다. 장시호 씨는 뜯어낸 기업 돈으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이런 장 씨에 대해 검찰은 구속을 면해주고 겨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러자 법원은 구형보다 무려 1년이 많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까지 했다. 법원의 중형 선고는 플리바기닝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 형사사건의 90%가량이 재판 없이 피고인이 유죄 인정을 하는 대신 형량을 감면받는 플리바기닝으로 종결된다. 플리바기닝은 배심제의 사생아라는 말이 있다. 배심 재판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배심원이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형사사건이 많아지면서 플리바기닝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플리바기닝은 판사 앞에서 피고인의 의사가 자발적인지, 사실관계가 뒷받침되는지 확인한 후에 인정된다. 이 과정에서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할 범죄사실, 검찰이 불기소할 범죄사실이 밝혀진다.

▷정 씨의 이화여대 입시비리 사건으로 정작 구속되고 처벌된 것은 교수들뿐이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핵심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삼성 측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공판에서 김 전 차관이 삼성에 관해 한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플리바기닝이 검찰 밀실에서 이뤄져 사실관계가 뒷받침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있는 장 씨나 딸 결혼을 앞둔 이 전 실장에게 구속을 두고 거래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자발적인 협조라고 보기 어렵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최순실#검찰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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