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 “종단의 정치화 반성… 수행-화합에 집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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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간담회
“지금 불교는 바다서 침몰하는 배, 자신을 내려놓는 수행만이 해법… 자기단련-양보의 정신 되새기며 분란의 씨앗 선거제도 개선해야”

설정 총무원장은 “항상 안주하지 않고 세상에 무엇이 이로운지 열린 자세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설정 총무원장은 “항상 안주하지 않고 세상에 무엇이 이로운지 열린 자세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불교에서 종단의 역할은 수행자가 수행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게 근간입니다. 솔직히 그간 종단이 너무 정치화, 정치집단화됐다는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해 불교의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세간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설정 스님(75)은 차분하지만 굳은 결기를 내비쳤다. 지난달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 갖는 언론 간담회에서 유독 수행과 화합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불교는 모름지기 깨달음을 향해 정진할 뿐 다른 것에 눈 돌려선 안 되며 자비심을 갖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정 총무원장은 이를 위해 “총무원을 비롯한 모든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끝없이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리란 모든 열정을 쏟아 철두철미하게 자기 단련을 하는 것이며 이타는 부처님 가르침을 지키며 양보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솔직히 이 나이에 선방에서 생활하는 게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도심 속 총무원에 기거하니 공기도 나쁘고 시끄러워 잠도 잘 못 자요. 하지만 여러 차례 거절하다 결국 선거에 나섰던 건 이런 불편함도 모두 감수하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지요. 지금 불교는 망망대해에서 침몰하는 배와 같은 형국입니다. 하지만 해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수행에 집중하면 타인과 시비가 생길 일이 뭐가 있습니까. 승가(僧伽·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가 승가다우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설정 총무원장은 특히 현 조계종의 선거제도가 분란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직선제건 간선제건 선거를 통해 총무원장을 뽑으면서 파벌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선거가 민주주의적 방식인지는 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화합과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삼보정재(三寶淨財·사찰의 재산)를 헛되이 쓰며,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스템은 꼭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악법도 법이니까 무작정 폐지할 순 없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대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패거리문화를 양산하는 현 체제보다는 부처님의 뜻을 되살린 ‘만장일치제’를 도입하려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진흙탕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여서야 누가 불교를 신뢰하겠습니까. 이는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불교 십중대계(十重大戒)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최근 설정 총무원장은 무척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지진 피해 지역인 경북 포항시를 방문해 이재민을 찾았고, 다음 날엔 전남 목포시를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했다. 스님은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건 불교가 첫 번째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며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진정성을 갖고 종단 안팎의 대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계종#설정 스님#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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