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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적폐청산’ 간판에 가려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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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전성철]‘적폐청산’ 간판에 가려진 진실

전성철기자 입력 2017-12-11 03:00수정 2017-12-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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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검찰이 지난달 초 김재철 전 MBC 사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제일 앞에 적은 죄명은 국가정보원법 위반(직권남용)이다. 국정원 직원의 권한 남용을 처벌하려고 만든 법 조항을 전직 방송사 사장에게 적용하며 검찰이 전개한 논리는 이렇다.

2008년 4월 29일 피디수첩의 ‘광우병’ 편은 집권 초 이명박 정부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피디수첩 방영 전 50%대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방송이 나간 후인 같은 해 6월에는 7%대로 급락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MBC 등 방송사를 비롯한 방송, 문화, 예술계 인물과 단체를 ‘좌 편향’ 세력으로 규정지어 탄압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와대로부터 이런 정책기조를 하달받은 국정원은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10년 3월경 MBC를 친정부화하는 계획을 담은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곧 국정원 직원을 통해 김 전 사장에게 전달됐다. 김 전 사장은 2012년 12월까지 문건에 담긴 ‘좌파 성향’ 간부진 교체 등의 내용을 차례로 실행했고 그 결과를 국정원 측에 알려줬다. 따라서 김 전 사장이 한 일은 국정원과 공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검찰이 그린 ‘큰 그림’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한 MBC 피디수첩 방송으로 이명박 정부가 크게 흔들렸던 건 분명하다. 이에 청와대가 MBC를 친정부화하려는 의도로 이 전 대통령과 정치부 기자 때부터 20년 가까이 교류해 온 김 전 사장을 MBC 수장에 앉히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합리적이다. 또 김 전 사장이 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안국포럼)에서 함께 일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긴밀하게 협조했을 거라는 점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연결고리로 김 전 사장을 국정원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는 다퉈 볼 부분이 많다. 김 전 사장이 MBC 사장으로서 한 일들이 국정원의 지시 때문인지, 국정원 소속이 아닌 김 전 사장이 국정원법 위반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 또 김 전 사장 구속영장 논리대로면 올 상반기까지 국정원 직원이 ‘연락관’으로 출입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수장 중에 형사처벌을 면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고민해 볼 문제다.

김 전 사장의 진짜 죄명은 25장 분량의 영장 범죄 사실 중 맨 마지막 두 장에 적혀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다. 김 전 사장은 편성과 제작 방침 등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을 일방적 교육, 재교육 명령으로 직무 현장에서 몰아냈다. 그는 노조원들을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MBC 아카데미’에 보내 ‘샌드위치 만들기’며 ‘한류(韓流) 강의’ 따위를 수강하게 했다. 국정원 직원을 통해 ‘윗선’의 뜻을 전달받아 이를 3년여 재임 기간에 두고두고 실행했다는 혐의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이처럼 김 전 사장의 구속영장 범죄 사실이 앞뒤가 바뀐 것은 ‘적폐청산’ 수사 프레임 탓이다. ‘국정원이 전 정권 적폐의 몸통’이라는 틀을 우선시하다 보니 김 전 사장 같은 고약한 노동법 위반 사범이 정치범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도 문무일 검찰총장의 공언처럼 적폐청산 수사는 연내에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전 정권의 잘못을 덮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폐청산 간판을 내려야 진짜 잘못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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