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불법주차 못막아서 합법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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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심주차 허용에 비판 목소리
덕수궁 앞 등 상습위반 4곳, 노상주차 허용으로 방침 바꿔
“통제는 못할망정 합법화라니…” 보행안전 위협받는 시민들 불만

서울 도심에 불법 주차한 관광버스들. 동아일보DB
서울 도심에 불법 주차한 관광버스들. 동아일보DB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도심 관광버스 주차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관광버스의 고질적인 불법 주차를 막고 주차난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터와 남산 예장자락처럼 개발되는 곳에 주차 공간 360면을 새로 조성하고, 면세점처럼 주차 수요가 많은 시설물은 스스로 방안을 만들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불법 주차한 버스에 물리는 과태료를 서너 배 인상하는 방안도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별다른 진척은 없다. 예장자락에 들어설 버스 주차 공간 39면 말고는 주차장을 어디에 새로 만들지 확정하지 못했다. 자구책을 내놓지 않은 대형 면세점에 혼잡통행료와 교통유발부담금을 더 내도록 하지도 못했고, 주차장 설치 기준을 마련하는 조례는 시의회를 언제 통과할지 불투명하다. 불법 주차 과태료도 5만 원 그대로다.

그 대신 서울시는 도심 길거리 주차를 더 허용하기로 했다. 불법 노상(路上) 주차가 상습적으로 이뤄지던 4개 구간이 대상이다. 최장 2시간까지는 불법 주차 과태료 부과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합법화한 것이다. “불법이 많다고 아예 합법으로 만드는 이상한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달부터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시의회(105m)와 북창동 입구(60m), 종로구 창경궁로 홍화문∼선인문(75m), 서대문구 모래내로 일부 구간(312m)에 평일에도 관광버스 노상 주차가 허용된다. 최다 34대가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규모다. 서울시는 종로구, 중구에서 대상 도로를 추가로 물색하고 있다.

덕수궁∼시의회 구간은 주말에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평일에도 오전 9시∼오후 10시 주차가 허용된다. 버스, 승용차 모두 주차할 수 없었던 북창동 입구는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 관광버스만 주차가 가능해진다. 창경궁로는 기존 11대이던 노상주차 허용 구간을 16대 규모로 늘린다. 모래내로는 모든 차량이 오전 9시∼오후 8시 주차가 가능했지만 앞으론 관광버스만 주차할 수 있다.

이 구간들 대부분은 그동안 관광버스들이 불법으로 주정차하던 곳이다. 주말뿐만 아니라 수십만 명이 지나다니는 평일에도 ‘관광버스 차벽(車壁)’이 서는 때가 많았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기 전에는 보행자의 시야를 막고 매연이 항상 뿜어져 나온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시가 평일 노상 주차까지 허용함에 따라 차벽은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업계는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해제로 내년 2월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구에 회사가 있는 장모 씨(34)는 “불법 주차된 관광버스가 많으면 길을 건널 때마다 옆에서 오는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아 조마조마했다. 이것을 막지는 못할망정 합법화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도심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운 일반 시민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겨라 서울시 주차계획과 주무관은 “한 곳에 길어야 30분 머무는 현재의 단체관광 행태에서 서울역이나 경복궁 주차장 등으로 관광버스를 유도하는 게 쉽지 않다. 주차장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면서 차량 소통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노상 주차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간 8억 원을 들여 서울역에 33대를 둘 수 있는 관광버스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률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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