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반대 목소리 높이지만… ‘反美 결집’ 동력은 약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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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 파문… 이란 “아랍 민중봉기 부를것” 경고
사우디-이집트-터키 등 친미 국가… 불만스럽지만 정면 반기 힘들어
사우디 왕세자, 쿠슈너와 수차례 회동… 이란 견제 위해 사태 묵인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이스라엘 수도’ 선언에 이슬람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미래 수도로 여기는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 이란, 요르단 등 이슬람권 주요국이 한목소리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6일 앙카라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만나 “이슬람권에 분노의 불을 붙여 긴장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3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랍권이 겉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 “아랍 세계의 예루살렘을 향한 구호는 동력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사우디, 이집트, 터키같이 ‘대국’이면서 동시에 친미 성향인 나라들이 정치·경제적 문제들에 직면해 있어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기 힘들다. 트럼프의 예루살렘 발언이 불만스럽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보복 조치를 취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나라들은 모두 이슬람국가(IS) 퇴치,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같은 이슈들에 오랜 기간 에너지를 소모해 왔다.

특히 아랍권의 ‘맏형’ 격인 사우디는 정권 실세이자 왕위 계승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애초부터 이스라엘과 갈등을 벌이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활발해진 비공식 정보 교환과 고위 인사 회동의 중심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며 정통 유대교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무함마드 왕세자가 최근 수차례 회동하고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중동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사우디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선언을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는 소문이 많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외의 반대에도 예루살렘 선언을 강행한 것을 놓고 유대인 측근들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쿠슈너 선임고문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반대에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찬성했다”고 전했다.

안으로는 미국 내 기독교와 유대교 지지층을 결집하고 밖으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미국인은 31%에 불과하다.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문제는 공화당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층으로 알려진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53%가 대사관 이전을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팔레스타인에 ‘이-팔 평화협정에서 불리한 조건을 수용하라’고 보내는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대를 압박하는 ‘말폭탄’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왔던 고전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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