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이국종 교수, 동아일보 기자 지망생에게 편지 쓴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3일 1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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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아주대병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장)가 당시 동아일보 기자를 꿈꾸던 이들에게 보낸 편지가 실렸다.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오모 씨 주치의를 맡으며 다시 언론 중심에 선 이 교수는 당시에도 ‘아덴만 여명 작전’을 통해 구출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며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상태였다.

이 교수는 당시 동아일보 수습기자 공채 사고(社告)로 나간 이 편지에 “빈약한 한국 현대사에서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뭔가 옳은 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구와 ‘이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정신에 입각한 ‘아닌 건 아닙니다’라고 기사를 내는 연론사에 여러분은 인생을 거는 것”이라며 “여러분은 다른 언론사 기자와 달리 단순한 현상만을 표현하기보다 배경까지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며 타인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마음속 깊이 느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만이 100년 역사에 빛나는 민족정론지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동아일보의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교수가 이렇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신문‘이라고 동아일보를 평가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석 선장 몸에서는 총알 네 발이 나왔는데 해경에서 수거한 건 세 발뿐이었다. 한 발이 행방이 묘한 상황이었던 것. 이 때문에 수많은 기자가 이 총알 행방을 쫓은 게 당연한 일.

이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총알은 이 교수가 석 선장을 구하러 날아갔던 오만에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교수는 답답한 마음에 당시 취재현장을 지키던 동아일보 박민우 기자를 응급중환자실로 은밀히 불러 이 사실을 ’개인적으로‘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 총알 분실 사건이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있어 생긴 일이었다고 판단한 박 기자는 이튿날(2011년 2월 2일) ’石(석) 선장 몸속서 뺀 총알 1개 오만서 잃어버렸다‘고 기사를 썼다.


현재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 기자는 ”(기사가 나간 뒤) 돈독했던 나와 이 교수의 관계는 급랭했다. 기사가 나온 뒤 그와 첫 대면한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이 교수가 (근처에 있던) 소화기를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욕‘을 소화하며 이 교수를 진정시켰다“고 회고했다.

기자와 취재원은 이렇게 불편한 경험을 해도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 만날 수밖에 없다. 박 기자는 그 뒤로도 수술실에서 나오는 이 교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쫓아 다녀야 했다. 박 기자는 ”며칠이 더 흐르자 이 교수가 미안했던지 평소 성격처럼 ’쿨하게‘ 사과를 건넸다“고 전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쿨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록 음악이다. 그는 수술실에 록 음악을 틀어놓는 
것뿐 아니라 교내 록밴드 ’어레스트‘에서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하는 열혈 록 마니아다. 단, ”일이 생기면 바로 가야 한다“는
 이유로 수술복을 벗지 못한 채 베이스를 잡을 때가 많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쿨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록 음악이다. 그는 수술실에 록 음악을 틀어놓는 것뿐 아니라 교내 록밴드 ’어레스트‘에서 직접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하는 열혈 록 마니아다. 단, ”일이 생기면 바로 가야 한다“는 이유로 수술복을 벗지 못한 채 베이스를 잡을 때가 많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 인연으로 박 기자가 이 교수에게 ’후배들이 들어오는데 편지 좀 써달라‘고 부탁했고, 환자 치료로 바쁜 와중에도 이 교수는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편지를 써 새벽 2시에 박 기자 e메일로 보냈다. 박 기자는 ”’간단하게 써주면 된다‘고 부탁했는데 ’진짜 제대로 된 편지‘를 보내서 놀랐다. 편지를 읽으면서 이 교수가 내게 ’기자는 말 한 마디로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직업‘이라며 타이르듯 했던 얘기가 하나씩 떠올랐다“고 말했다.

2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 병원 지하 1층 아주홀에서 브리핑 중은 이국종 교수. 수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 병원 지하 1층 아주홀에서 브리핑 중은 이국종 교수. 수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 교수는 22일 브리핑 때 자신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이 자리서 ”동아일보 박민우라는 기자가 있다. 석 선장 치료 때 단편적인 기사, 지엽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백그라운드를 봐야 한다고 혼낸 적이 있다. 지금은 잘 성장해서 특파원으로 가 있다. 그런 기자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이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는 방증이다.

동아일보 기자 중 이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은 건 박 기자 혼자만이 아니다. 이 교수는 그해 8월 11일 자기 편지를 받고 동아일보에 지원해 합격한 수습기자와 직접 만나 삶의 철학을 들려주기도 했다.

2011년 8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동아일보 수습기자를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11년 8월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동아일보 수습기자를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당시 강의를 들었던 조건희 기자(사진 왼쪽)는 현재 동아일보 보건복지 담당으로 이번 JSA 귀순병 사건 때 이 교수 ’마크맨‘으로 활동하며 연일 의미있는 단독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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